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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손에 털린 '무방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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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손에 털린 '무방비 도시'

입력
2008.07.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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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5시 30분께 서울 인사동의 한 의류 매장. 손님들로 붐비는 매장 입구에서 일본인 관광객 A(70ㆍ여)씨를 세련된 옷차림의 ‘노년’ 여성 3명이 둘러쌌다.

속칭 ‘안테나’ 역할을 맡은 여성이 망을 보는 사이 ‘바람잡이’ 할머니가 물건을 고르는 척하며 A씨의 주위를 분산시켰고, 그 순간 소매치기 경력 40년의 장모(71ㆍ여)씨가 순식간에 면도칼로 A씨 가방을 찢어 지갑을 꺼낸 뒤 사라졌다.

소매치기를 소재로 한 영화 ‘무방비 도시’의 한 장면이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재현된 것이다. 다른 점은 주인공이 20대 여배우 손예진이 아닌, 인생 황혼에 다다른 60~70대 할머니라는 점.

부동산과 예금 등 수 십억원의 재산을 가진 부유층 할머니 2명과 50대 중년 여성 2명 등 4명으로 구성된 소매치기단이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4일 강남과 명동 일대에서 행인들 가방이나 핸드백을 면도칼로 찢는 속칭 ‘빽따기’ 수법으로 금품을 훔쳐 온 ‘봉남파’ 조직원 4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봉남파는 나이와 재력 모두 평범한 소매치기 조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리더인 장씨와 임모(68ㆍ여)씨는 각각 24범, 20범의 소매치기 전과가 보여주듯 슬하에 손자를 둔 할머니고, ‘안테나’와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하수인 두 명도 50대 중반이다.

더 놀라운 것은 장씨와 임씨의 재산. 임씨는 분당에 건물을 3채나 갖고 있고, 장씨도 경기 부천시에 5층짜리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임씨는 벤츠, 장씨는 그랜저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자녀를 외국에 유학보내기도 했고, 범행을 할 때도 명품 옷을 차려입었다.

솜씨 좋은 소매치기를 뜻하는 ‘명품 기계’ 반열에 오른 임씨와 장씨는 10년 전 교도소에서 만나 봉남파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은 수시로 ‘안테나’와 ‘바람잡이’를 바꿔가며 강남과 명동 일대 백화점에서 행인들의 가방을 털었다.

그동안 서너 차례 경찰에 붙잡혔지만 바로 풀려났다. 재력을 바탕으로 수임료가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매치기를 했다’고 호소한 게 주효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두 사람은 ‘20대 시절부터 해온 ‘손 맛’을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는데, 이번에도 정신병 핑계를 댈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소매치기로 재산을 모았는지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재산 형성 과정을 조사키로 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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