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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팔던 가난한 소년 '미군장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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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 팔던 가난한 소년 '미군장교 됐다'

입력
2008.07.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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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행상, 배달원을 전전하던 가출 소년이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 출신의 미군 장교가 됐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와 한미연합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 주인공은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의 연습계획장교인 박진우(40ㆍ소령 진급예정) 미군 대위다.

22일 연합사에 따르면 전남 나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 대위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 중학교 2학년 때인 1982년 무작정 가출했다. 서울로 올라와 자장면 배달원으로 밤낮을 일했지만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는 등 삶은 순탄치 않았다. 86년 막내 동생이 갑작스런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몫까지 살겠다”는 각오로 낮엔 야채행상을 하고 밤엔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88년 고입검정, 89년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다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큰 나라에서 공부하겠다는 말에 주위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90년 8월 워싱턴의 이스턴 주립대학에 조건부로 합격했다. 스물 세 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낡은 중고차와 학교 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학비를 벌기 위해 대학 경비원 모집에 응시했다. 박 대위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여덟 번째 찾아갔더니 경비를 맡겼다”며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덤볐다”고 회상했다. 그는 4년 대학 과정을 2년 반 만에 마쳤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의 꿈은 인종차별의 벽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래서 그는 군을 택했다. 98년 사병으로 입대한 그는 장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미국 시민권을 받으려면 3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무작정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을 찾아가 제가 살아온 인생 역경을 모두 털어놓고 시민권을 받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독일에서 근무 중이던 200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박 대위는 사관후보생(OCS)시험에 합격, 14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그 해 12월 장교로 임관했다. 2001년부터는 미군 수송부대 소대장과 지원중대장을 맡았고 군 복무 중에도 학업을 계속해 알래스카 주립대학원에서 물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1년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면서 동성무공훈장까지 받았다.

작년 1월부터 한국에서 근무 중인 박 대위는 “목표를 크게 세우고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달리면 성공한다”며 “앞으로 저의 도전하는 삶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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