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에 사는 다이앤 맥리어드(47ㆍ여)씨는 올들어 집을 차압 당하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대출로 마련한 침실 2개짜리 작은 집, 기아 자동차, 명품 핸드백 등을 유지하느라 작년 세전수입(4만8,000달러)의 40%인 2만달러를 빚 갚는데 쓴 결과다. 그는 요즘도 추심회사로부터 하루 20통씩 빚 독촉 전화를 받는다.(뉴욕타임스 20일 보도)
#2. 2005년 하반기, 하루하루 치솟는 집값에 '더 기다리다간 아예 못 사겠다' 싶어 담보대출 2억원을 받아 서울 서초구에 아파트를 산 민모(45)씨. 집값이 오르기만 바라며 그동안 근근히 이자를 내며 버텨온 민씨는 최근 집값이 되려 떨어지고 3년 거치기간이 끝나 원금상환 부담이 다가오자 결국 집을 세주고 강북 전셋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는 "세금폭탄은 둘째 치고, 앞으로 금리까지 오른다는데 큰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가 미국처럼 '가계부채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은 뒷걸음질치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미 급증한 가계부채는 ▦개인들에겐 원리금압박과 파산위험을 ▦금융기관엔 부실위험을 ▦경제전체로는 내수침체와 장기불황위험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선제적으로' 부채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자칫 미국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1분기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640조5,000억원. 매년 50조원 가까이 불어나고 있다. 전체 경제규모(국내총생산ㆍGDP) 대비 부채 총액은 미국(GDP 대비 99.9%)보다 좀 낮지만 증가율(1999~2005년)만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스페인,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다. 특히 부동산 투기바람과 은행들의 영업전략이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은 올 5월 현재 전체 은행 가계대출의 61%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미국경제의 현 위기 역시 진짜 출발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아니라 과도한 가계부채였다. 장기간 계속된 저금리 하에서 주택가격이 상승하자, 미국인들은 손쉽게 빚을 내 소비하고 집을 사들였지만 금리인상으로 집값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이자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주택가격 추가하락→담보가치 하락→금융부실 심화→경기침체→소비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 이후 8년만에 '고금리 시대'를 앞두고 있다. 금리상승과 집값 하락이 맞물릴 경우, 빚을 지고 있는 가계의 신용위험은 극대화될 전망이다. 원리금 압박은 가계긴축으로 이어지고, 소비와 내수경기는 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고성수 교수는 "앞으로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지면 가계의 원리금상환 불이행 가능성이 커져 미국처럼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가계부채는 경제규모나 소득수준에 비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며 "특히 부채증가의 배경이 미국과 유사한 집값상승에 편승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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