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도반 카라지치는 1990년대초 발칸반도를 피를 물들인 인종학살극의 주범이면서도 국제사회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고 10년 넘게 도피생활을 해왔다. ‘발칸의 도살자’, ‘심판받지 않은 악의 상징’이란 별명이 그의 잔혹함을 일러주고 있다.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지도자였던 그는 1990년대 초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92~95년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켜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 수만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유고연방 유지를 바라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2006년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옥사) 전 신유고연방 대통령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95년 데이턴 평화협정과 함께 전범으로 기소된 그는 96년 세르비아계 대통령과 세르비아 민주당(SDS) 당수직 등 모든 당직에서 사퇴한 뒤 종적을 감췄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몬테네그로와 베오그라드를 오가며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와중에 희곡 작가로도 활동해 세르비아 정부의 비호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그는 1944년 이슬람 정복자들에 대항해 기독교를 지킨 중세 영웅들의 전설이 남아 있는 몬테네그로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군에 맞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게릴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60년대 초 가족과 함께 보스니아 사라예보로 이주해 정신과 의사이자 아마추어 시인으로 활동했다.
세르비아계 민족주의 작가인 도브리카 코시치의 영향을 받아 정계에 입문, 89년 세르비아 민주당(SDS) 당수에 선출됐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슬람계의 피를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이슬람 여성을 납치, 강간하도록 사주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비교되기도 한다.
보스니아의 여성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가 만든 영화 ‘그르바비차’는 내전의 현장인 사라예보의 작은 마을에서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윤간당해 딸을 낳은 이슬람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방 세계가 그를 추적하는 스토리를 다룬 할리우드의 블랙 코미디 영화 <보스니아의 봄 휴가(spring break in bosnia)> 가 제작되기도 했다. 보스니아의>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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