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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북한은 당황하고 있나

입력
2008.07.2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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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해 당황해 한다는 얘기가 사실일까. 정황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17세 신참 여군이 경직되게 초병근무 수칙을 고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거나 ‘어느 쪼꼬만 병사가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라는 얘기가 그냥 흘러 나올 리 없다.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북측의 형편과 금강산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외화 규모를 감안하면 관광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전혀 없다. 북측은 올 상반기만 1,000만 달러가 넘는 금강산 관광대가를 챙겼다. 개성관광 수입은 650만 달러였다. 정상적 방법에 의한 외화 벌이가 극히 제한된 북한으로서는 큰 돈이다.

‘우발적 사고’에 책임 전가ㆍ침묵

게다가 예년처럼 대집단 체조 아리랑 공연으로 한 목 보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비공식적으로 남측에서 챙기던 달러도 상당기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8월 초부터 공연되는 2008년 판 아리랑엔 핵 개발 강행 불량국가라는 이미지 탈피를 노려 ‘영변 비단처녀’ 라는 작품을 새로 포함시키며 준비해온 북한이다.

정세 상으로도 그렇다. 미국의 적성국 교역법 적용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려는 북한의 발버둥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북핵 신고와 불능화의 상응 조치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절차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결코 아니다. 미국 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이 심하고 변수도 많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그들로서는 미 국무부의 테러지정국 해제 의회 통보 후 45일 시한인 8월11일까지는 각별히 몸조심을 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니 이 사건 때문에 당황할 만도 하다.

북한은 전방 초병이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라고 적극 해명하겠지만 국제사회가 관광지에서의 민간인 살해를 납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일을 일으켰을 개연성이 희박한 것은 이런 점으로도 뒷받침된다. 김정일 정권 차원의 판단과는 다르게 강경군부가 독자적으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군부가 그렇게 제멋대로라면 김정일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기나 했을까.

북측은 사건이 정말 우발적이었음을 증명하려면 진상조사를 피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 조사가 없으면 남측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없다. 우발성이 확인된 뒤에도 과잉대응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응분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를 꺼리면 금강산 관광 재개와 남북관계의 회복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책임을 따지자면 현대아산과 남한 정부도 자유롭지 않다. 보수정권이 들어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당연히 안전 취약 점을 점검해 보완하고, 관광객들에게 규칙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현대의 경영 차원에서라도 필수였다. 그런 판단과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CEO 이하 책임 라인이 진정한 프로라면 이런 사태는 미연에 막았어야 했다. 기업가적 자질과 능력이 의심스럽다.

이명박 정부는 전 정권과 차별화한 대북정책을 공언했기에 북측 반발과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했다. 당연히 서해 NLL과 비무장지대, 금강산ㆍ개성 관광 현장 등에서 우발적 혹은 의도된 마찰이나 충돌을 예상하고 점검과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통일부는 엊그제야 기자들의 추궁을 받고 금강산 해수욕장의 안전 상황 점검을 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이명박 정부도 당황ㆍ책임 전가

통일부만이 아니라 외교안보라인 전체의 책임이다. 대통령은 단 한 번이라도 우려를 표시했을까. 그러고서는 뒤늦게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예방조치 소홀의 책임을 전부 현대에 뒤집어 씌웠다. 그 자리서 자기반성조차 없었다면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분노하는 여론에 놀라 온갖 강경대응책을 중구난방으로 거론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금강산 사건과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분리 대응하겠다고 한다. 우발적인 사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꼴에 국민들의 걱정이 커져 가는 것을 알기나 할까.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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