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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놈놈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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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놈놈놈'의 역설

입력
2008.07.23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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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6일 만(22일까지)에 270만명. <디 워> 와 <괴물> 다음으로 빠른 속도다. 순 제작비만 무려 190억원.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 은 마케팅비를 빼고도 관객 650만명이 들어야만 겨우 본전을 건질 수 있는 거액을 쏟아 부었다. 흔치 않게 한번에 3명의 빅 스타가 나온다. 사활을 걸고 칸영화제에까지 날아가, 사실은 국내를 겨냥해 일찌감치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 투자ㆍ배급사(CJ엔터테인먼트)의 힘도 컸다. 스크린(725개)도 마음껏 잡았다.

▦모든 대박 영화가 그렇듯 <놈놈놈> 을 두고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3가지는 있고, 3가지는 없다’이다. 화려한 액션과 연출로 볼거리가 있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있으며, 향수가 있다. 반면 줄거리가 없고(단조롭고), 정체성이 없으며, 독창성이 없다. 악역 리 반 클리프의 연기가 일품인 32년 전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의 존재와 기억 때문이다. 독창성과 향수의 ‘없다’와 ‘있다’도 결국 ‘모델’의 ‘얼굴과 옷만 살짝 바꾸기’에서 나왔다.

▦정체성에 대한 불만은 두 가지다. 도대체 어느 나라 영화냐. 주인공들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들인데 민족의식, 역사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독립군의 부탁을 받은 착한 놈이라는 박도원(정우성)조차 “나라는 없어도 돈은 있어야지”라고 말한다.

매국노를 잔인하게 죽이면서 “오래 살았지. 나라도 팔아 먹고”라고, “돈 벌어 고향 가서 땅 사겠다”고 해서 나쁜 놈 박창이(이병헌)와 이상한 놈 윤태구(송강호)에게 애국심이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단지 날강도들일 뿐이다. 영화 역시 어디서도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정체도 그렇다. 분명 좋고, 나쁘고, 이상한 놈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그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같은 놈’으로 취급된다. 단지 독립군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좋은 놈이고, 복수에 눈이 멀어 살인을 밥 먹듯이 해서 나쁜 놈이고, 내 기준으로는 어느 한 쪽으로 단정하기 힘들면 이상한 놈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을 뒤엎는다. 선 속에도 악이 있고, 악에도 선이 있으며, 영악함 속에도 순수함이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극단적 이분법, 동지 아니면 적인 세상에 살고, 오늘도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악을 써대는 우리에게 <놈놈놈> 은 ‘배, 배신자’일 수 밖에.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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