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때 ‘땡전뉴스’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앞으로 ‘땡이뉴스’가 생기는 것 아닌가 걱정하곤 한다. 대통령의 방송특보를 했던 사람이 방송사 사장이 됐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통령 후보 선거참모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후보와 국정철학과 비전, 가치관까지 공유하는 분신과 같은 존재다. 그런 측근이 수장이 된 방송이 정권의 실정, 대통령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당사자는 “정권의 나팔수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도 이런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KBS는 정부 산하기관”이라며 “KBS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언론관과 방송관이 이토록 천박하다는 게 놀랍다. 공영방송은 정부나 정권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의 공공재다. 공영방송인 KBS를 정부 산하기관으로 규정한 것도 그렇고, 공영방송을 관영방송쯤으로 인식하는 발상이 한심스럽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에 대한 집착은 파상적이고 전방위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눈엣가시 같은 KBS이사를 이례적으로 긴급안건 상정을 통해 해임시켰다. 그런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언론재단 이사장과 신문유통원 원장에게 물러날 것을 거듭 재촉했다.
현 정권의 행태를 보면 마치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언론 길들이기’로 정한 것 아닌가 싶다. 공기업은 쏟아지는 낙하산 인사 비판에 눈치도 보는 듯 하지만 언론쪽은 너무 노골적이고 집요하다.
지금 ‘방송 장악’이 만사 제쳐놓고 돌격대처럼 밀어붙일 만큼 화급한 사안인가. 경제는 수렁에 빠져있고, 독도파문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등 손을 놓고 있는 현안이 널려있는데 언론분야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속전속결이다. 마치 거대한 각본에 따라 일을 착착 진행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집권세력은 일부 방송 등 언론을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면 발목이 잡히는 일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촛불집회 과정에서도 나타났듯 지금은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들이 엄청난 정보와 뉴스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유통시킬 만큼 미디어환경이 달라졌다. 일부 방송이나 신문만으로 여론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칫하면 언론 전체가 불신의 늪에 빠지고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언론현장의 저항과 반발,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정치권과 일부 국민들의 반발 등 후폭풍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5년 전 노무현 정권도 자신의 언론정책 고문이던 서동구씨를 KBS 사장에 임명했다가 거센 저항에 부딪치자 취임 9일 만에 사퇴토록 했다. 대통령의 측근이 사장이 되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것이 당시 저항을 불러 온 이유였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결과가 뻔히 보이는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안타깝다 못해 측은하다.
이명박 정부는 이쯤해서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 늦기 전에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게 낫다. 더 바란다면 방송사 사장을 정권의 전리품 취급할 게 아니라 정권만 바뀌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게 국민의 바람이고 시대의 요구다.
이충재 부국장 겸 문화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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