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육군의 의뢰를 받아 원자폭탄 개발을 진행했던 도쿄(東京)대 이화학(理化學)연구소의 대형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 제조ㆍ실험 일지가 처음 발견됐다고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21일 보도했다.
일지는 이화학연구소에서 1944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20톤의 대형 사이클로트론을 만들어내기까지 제조 과정과 실험 내용을 도면과 수치를 넣어 일요일을 빼고 하루도 빠짐 없이 기록한 것이다.
사이클로트론은 자기장 속에서 원운동 하는 이온을 가속해 핵 변환을 일으키고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입자물리학의 기초실험장치이지만 원폭 연구에 일조한 이면성을 지녔다.
연구소는 패전을 전후해 원폭 개발 책임 추궁을 우려, 관련 기록을 모두 소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화학연구소 자료를 소장한 니시나(仁科)기념재단에서 도서 정리 중 찾아낸 이 자료는 연구소의 원자핵 연구 작업을 밝히는 1급 자료라고 일본 언론들은 평가했다.
일지는 42년 7월부터 43년 1월까지, 43년 2월부터 44년 4월까지의 작업을 각각 A5 크기 공책 두 권에 일기 형식으로 담았다. 당시 사이클로트론 담당이던 야마사키 후미오(山崎文男) 박사가 주로 쓰고 다른 연구원들이 수시로 데이터 등을 추가했다.
일지 속에는 자재 부족으로 장치를 진공으로 보전하는 데 고생하거나(42년 7월) ‘드디어 빔 번쩍이다’(43년 12월) 등 작업 성공에 기뻐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실험 중 방사능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연구자의 백혈구 감소 내용도 적혀 있다.
전쟁 말기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군은 40년대 초반부터 육군과 해군이 각각 원폭 개발을 진행했다. 육군은 도쿄대 이화학연구소에 의뢰해 43년 1월 작업을 시작했고, 해군은 이보다 앞서 41년 5월 교토(京都)대에 개발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현대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가 주도한 육군의 ‘니고(二號)연구’와 해군의 ‘F연구’는 하지만 원폭 제조에 필요한 임계량 이상의 우라늄 235 확보가 어려운 데다 기술 수준이 낮아 큰 진척을 보지 못했다. 패전 이후 관련 장치들은 연합군총사령부가 모두 파괴했고 특히 사이클로트론은 해체해 도쿄 앞바다에 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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