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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개헌과 자유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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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개헌과 자유시장경제

입력
2008.07.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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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정 문제가 정치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아직은 대통령 임기 5년의 어느 시점이 개헌에 적절한지 논란하는 단계다. 그러나 여야 국회의원 140여명은 ‘미래한국헌법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부 형태 등에 관한 토론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연말까지 개헌안 초안을 마련, 내년 상반기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대로라면 발걸음이 빠르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제헌절 기념사에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개헌안 의결권을 지닌 국회의 수장으로 한 몫 하겠다는 의지로 들린다. 그러나 개헌에 얽힌 복잡다단한 이견과 갈등을 조정, 통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갈등 부추길 ‘시장경제’ 개헌론

국회와 함께 개헌안 발의권을 지닌 대통령은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다만 이석연 법제처장이 헌법 119조 2항을 비롯한 경제 조항이 자유시장경제를 제약한다며 “헌법을 시장경제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눈에 띈다. 그가 헌법 규범의 적실성을 재단하고 국민의 주권적 의사를 대변하는 지위에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정부 쪽 생각을 헤아리는 데 참고할 만하다.

어쨌든 오래 미뤄온 개헌인 만큼, 권력구조뿐 아니라 통일을 내다본 영토조항 개정 등을 폭 넓게 논의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체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중심으로 2010년 지방선거 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쟁점은 정치 경제 사회 이념적 갈등이 얽혀있어 심각한 대립과 교착에 이르기 십상이다.

이런 이념 논쟁이 불붙으면 그야말로 초가삼간을 다 태워도 아랑곳 없다는 듯 죽기살기로 싸우는 사회다. 쇠고기 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이념적 이슈를 냉철한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논란하기보다는 진보와 보수, 친시장과 반시장 등으로 편을 갈라 머리 터지도록 싸울 게 뻔하다. 21세기 국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헌법질서 정립의 명분은 이내 실종되고, 거친 욕설과 동물적 몸싸움으로 세월을 보낼 것이 걱정스럽다.

지나친 우려라고 할지 모르나, 이석연 처장의 발언에서 이미 그런 조짐을 본다. 현행 헌법이 자유시장경제를 제약하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말은 자유시장경제를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시정,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헌법 원리로 삼은 국민적 합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학자가 아닌 법제처장이 이렇듯 편향된 주장으로 정치사회적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에 앞서 ‘미래한국헌법연구회’ 토론회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개헌을 주장한 보수 경제학자는 헌법 119조 2항이 규정한 ‘균형성장, 경제성장,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억제, 경제 민주화’ 등의 헌법 원리의 정당성을 송두리째 부정했다. 아무리 경제논리를 중시하는 경제학자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역사적 경험 및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는 도저히 존중할 수 없다. 좌우의 극단적 주장이 세상을 마냥 어지럽히는 현실이지만, 국가 기본질서를 다루는 개헌 논의만은 이론과 현실로 검증된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 갈 길 멀어

이를테면 국민의 실질적 자유와 평등을 위한 국가 개입과 복지국가 원리를 ‘낡은 환상’으로 치부한 것은 몰상식하다. 순수 시장경제 모델에 가까운 미국도 국가 개입과 규제의 역사는 길다. 그 내력을 되짚을 것도 없다. 최근 국책 주택금융회사의 부실을 막기위해 막대한 자금 지원에 나선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헌법의 경제관련 조항이 많은 것이 그릇된 이념과잉 때문일까. 제헌 이래 숱한 곡절을 겪고서도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와 성장 안정 분배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갈 길이 먼 현실의 반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직 고상한 목표에 머물고 있는 선언적 규정을 굳이 없애자고 외치는 것은 사회는 물론이고 정부에도 이로울 게 없다고 본다. 규제 개혁은 헌법과 무관하게 수행할 수 있고, 또 수행해야 할 과제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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