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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중소기업의 눈물 K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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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중소기업의 눈물 KIKO

입력
2008.07.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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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이나 금융수학의 의미를 잘 모르던 중소기업들이 올해 은행과 정부에 호되게 당한 환율 옵션의 이름이 KIKO다. 기업이 입은 피해는 올해에만 이미 몇 조원에 달하는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카지노에나 있어야 할 눈덩이(Snowball)라는 섬뜩한 계약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KIKO 약관이 불공정 약관이라며 제소했고,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정부에 대책을 요청했는데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해진다.

간단한 예를 보자. 작년 가을에 환율이 내려가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중소기업에 환상적인 제안을 한다. “환율이 930원으로 내려가도 사장님의 100만 달러는 저희 은행에서 950원씩에 사겠습니다.” 은행이 자선사업단체로 돌아선 것일까. 그런 데 넘어갈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은행은 좀 더 진짜처럼 보이는 제안을 한다. “대신 환율이 1,000원 넘게 올라가면 사장님은 300만 달러를 저희 은행에 950원씩에 팔아야 합니다. 돈을 낼 필요는 없고 여기 도장만 찍으면 됩니다.” 물론 수수료도 있다. 1,050원씩 하던 달러를 100원씩 손해 보며 950원에 350만 달러를 눈물로 넘겨줘야 하던 속에 들어 있었다.

이것은 두 가지 계약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중소기업은 자신에게 불리한 옵션을 팔아서 유리한 옵션을 사면서 공짜라고 좋아했던 것이다. 중고차 매매 브로커에게 자기 차를 내 주면서 알아서 팔고 알아서 새 차를 사오면 수수료와 차액을 청구서대로 내주겠다는 꼴이다.

옵션을 사는 것은 보험에 드는 것이고 옵션을 파는 것은 자신이 보험회사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파생상품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도 1,500억 달러를 날리고 파산한 바 있다. 은행은 보호 받아야 할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습하려 들지 말았어야 했고, 정부는 해당분야 대학원을 이수하고 다년간 실무경험을 가진 사람에게만 옵션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금융수학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정리가 있다. 골치 아픈 수학책을 읽지 않아도 조상님이 남겨준 속담으로 쉽게 이해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좋은 것을 왜 남에게 공짜로 줄까. 별로 좋은 것은 아니니까 팔아 넘기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는 잠깐 공짜가 생겨난다. 이번 공짜 점심은 은행이 챙긴 것이다. 중소기업은 자신과 은행의 정보력을 저울질해 보고 은행을 상대로 돈 놓고 돈 먹기 하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한데 문제를 크게 키운 것은 정부였다. 환율이 더 올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힌트를 날린 것이다.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베이징에서 경기하는데, 심판이 상대편 선수였다고 상상해보라. 올림픽에서는 심판이 개입하는 순간 경기는 몰수해서 무효 처리하고 재경기를 할 것이다. 내 의견에는 정부가 환율에 공개적으로 개입한 순간부터 KIKO는 무효이고 뒷일은 정부와 은행 둘이서만 알아서 정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1경 4,000조원 정도이다. 정부가 개입하면 단번에 수 십 조원의 주인이 바뀐다.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은 파생상품이 마치 “지옥같아서 쉽게 들어갈 순 있지만 나가는 문은 없다”고 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일은 정부가 지옥문 앞에서 바람잡이 노릇을 한 꼴이다.

한상근 과학기술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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