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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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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입력
2008.07.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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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 지음ㆍ한미선 옮김/도솔발행ㆍ208쪽ㆍ1만2,000원

“그는 물체의 오른쪽을 볼 수 없었다. 형태를 알아본다 해도 희미한 여백에 불과했다. 그는 물체의 완벽한 형태를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각들을 조합하고 그것의 의미를 유추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42쪽) 그러나 그것은 그를 괴롭히고 있는 일부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망실한 것이다.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1902~1977)는 1943년 독일군 방어 전투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25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청년 자세츠키의 삶을 추적,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이성적 지각과 판단의 기능이 제거된 청년의 마음속에 의사가 들어가 대신 질문하고, 화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기록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사례 심리학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오로지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해 내려는 일념으로, 청년은 3,000여쪽에 달하는 글을 써 갔다. 그러나 그는 대뇌전두피질의 3차 영역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정신이 없을 때가 많았으며, 쓴다고 해도 몇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심각한 기억 상실증과 실어증에도 불구, 오로지 과거를 복원하려는 일념으로 일기를 써 나간 청년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책이다.

청년의 상태로는 초등학교 1년생이나 배울법한 산수는 물론, 체스나 도미노와 같은 게임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온전한 건 상상력뿐이었다. 그는 부상을 입기 전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좋아하며 노랫말은 아니지만 노래 가락은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뇌의 일부 기능은 온전한 반면 다른 기능은 완전히 파괴되어 나타날 수 있는 이분법적 증상이다.

두통과 현기증, 전신의 통증, 극히 간단한 사고조차 불가능한 상태, 1분 이상을 넘지 못하는 기억력 등 비참한 정황에서도 청년을 구제해 준 것은 자신이 소유했던 능력을 회복하려는 강한 자의식과 상상력의 힘이었다. 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힘겹게 맞서 싸우는 그에게 왕성한 상상력은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고 쓴다. 이 진기한 기록은 장기간의 사례 연구라는 점에서 심리학의 진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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