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 묻어날 듯한 짙은 색상과 굵은 선이 눈에 설다. 토속적이고 이국적인 풍광, 혁명의 기운으로 넘실대는 검붉은 화면은 남국의 열정을 환기시킨다. 그렇다. 라틴아메리카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라틴아메리카 회화의 걸작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라틴아메리카 16개국의 대표적 거장 84명의 작품 120여점을 선보이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을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다.
영화로 더 유명해진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부터 풍만한 인물표현으로 유머와 풍자의 미학을 펼치는 콜롬비아의 국민작가 페르난도 보테로까지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이런 대규모 남미 미술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나뉘어 꾸며진다. 제1 전시실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벽화운동> 에서는 1920년대 멕시코에서 시작돼 남미를 풍미한 벽화운동이 어떻게 남미 미술에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의>
백인지배에 대항,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일어난 1910년의 멕시코 혁명은 전통적인 원주민 문화에 기반한 새로운 민중미술을 창출해냈다. 모더니즘의 간결한 구성과 세련된 색채로 멕시코 노동자 계급의 여인을 그린 <피놀레 파는 여인> 는 이 경향을 대표하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피놀레>
그와 함께 멕시코 르네상스의 3대 대가로 불리는 호세 클레멘터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민중을 감시하는 칼 찬 세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엑토르 폴레오의 <위원들> 은 베네수엘라의 국보급 걸작이다. 위원들>
두 번째 전시실 <우리는 누구인가-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에는 남미 특유의 다양한 혼혈인종과 혼성문화가 반영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미술을 통한 역사와 정체성의 탐구는 때로는 육중한 전통으로, 때로는 화사한 모더니티로 발화하는데, 베네수엘라의 펠리시아노 카르바요가 그린 풍경화 <쾌적한 여름> 이나 프란시스코 나르바에스의 <원주민 여인>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원주민> 쾌적한>
제3 전시실 <나를 찾아서-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 에서는 서유럽적인 조형언어와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 특징들을 결합한 마술적 환상주의와 마주치게 된다. 나를>
여성으로서의 고통과 정체성을 드러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코요아칸의 프리다> 와 칼로 특유의 강렬한 화풍이 잘 드러난 <미겔 n. 리라의 초상> 을 비롯해 뚱뚱보 그림으로 유명한 보테로의 <시인> 은 놓치면 안 될 필수작품들.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이 강하게 비치는 폴레오의 <쇠락> 도 전쟁 후의 피폐가 강렬한 심상으로 맺힌다. 쇠락> 시인> 미겔> 코요아칸의>
마지막 전시실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는 서정적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했던 서구와 달리 기하추상이 주도하게 된 1940년대 후반 이후의 추상 작품들로 구성됐다. 베네수엘라의 알레한드로 오테로, 아르헨티나의 루시오 폰타나, 우루과이의 토르레스-가르시아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 형상의>
이번 전시는 서유럽에 편중된 한국의 미술전시 풍토를 안타깝게 여긴 주한 16개국 라틴아메리카 대사관이 연합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를 제안, 기획됐다. 작품 선정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각국의 협조를 얻어 직접 담당했으며, 작품 총평가액 4,000만달러에 달하는 작품들은 11대의 비행기에 나눠 실려 한국에 왔다.
최은주 덕수궁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모더니즘과 전통의 갈등, 그로 인한 상처와 치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재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초등학생 6,000원, 청소년 8,000원, 성인 1만원(덕수궁 입장료 포함). 문의 (02)368-1414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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