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민병훈 부장판사)이 같은 혐의로 1ㆍ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도 무죄라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이 전 회장 사건은 앞으로 대법원에서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상급심에서 상당한 법리적 논쟁이 예상된다.
민 부장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허태학ㆍ박노빈 씨 등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의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증거가 있을 경우) 에버랜드 법인 주주들의 배임에 대한 방조범이나 공동정범은 될 수 있을지언정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날 “에버랜드가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CB를 제3자에게 발행함으로써 실권한 주주들에게는 손해가 돌아갔을지 몰라도 에버랜드가 입은 손해는 없다”며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 논리의 연장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허ㆍ박 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던 2심 재판부는 CB 헐값 발행으로 에버랜드 법인이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양 재판부가 법률적 판단을 달리한 것으로, 대법원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 부장은 특별검사팀의 ‘오기소’(기소를 잘못함)도 지적했다. 그는 “면죄부를 준 것은 우리(재판부)가 아니라 국세청과 검찰과 특검”이라며 “애초 에버랜드 헐값 매각 의혹 수사 당시 국세청과 검찰이 기소를 잘못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민 부장은 “(헐값으로 발행한 CB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증여하면서 탈세의 의도는 있었을 수 있다”며 특검이 이 전 회장 등을 조세포탈로 기소할 수 있었음을 암시했다.
민 부장은 또 “소액주주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는 게 이 전 회장의 문제”라고 말했다. 계열사 주주들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법인 주주의 재산을 무단으로 가져간 결과가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을 두고 손해액을 50억원 이하로 책정, 공소시효 만료에 따라 면소 판결을 한 데 대해서도 민 부장은 “회계법인 3, 4곳에 적정가를 감정케 하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재판 일정상 힘들었다”며 “항소심에서 그렇게 감정할 경우 (1심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회계법인 중에서 삼성에 불리하게 주식가치를 적어낼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사실 해봤다”는 민 부장은 “다른 방식으로 손해액을 산정해 유죄 취지의 판결문을 써 보기도 했다”며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음을 시사했다.
한편 조준웅 특검은 이날 이 전 회장 등에 대한 1심 판결 선고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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