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상 지음/창비 발행ㆍ244쪽ㆍ9,800원
소설가 정도상(48ㆍ사진)씨가 <모란시장 여자> (2005) 이후 3년 만에 출간한 소설집은 7편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됐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회 상임이사, 6ㆍ15민족문학인 남측 협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 관련 상황에 정통한 정씨는 이번 책에서 탈북 여성의 신산한 10년 여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모란시장>
주인공 ‘충심’은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열일곱 북한 처녀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은 충심의 가족에게도 예외가 없다. 이런 사정을 알고 취업을 알선하겠다며 접근한 조선족 여성들에게 속아 그녀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의 가난한 조선족 촌부의 아내로 팔려간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녀는 탈북자 신분을 숨기고 선양(瀋陽)에서 안마사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지만 한 조선족 부부의 농간으로 빈털터리가 된다. 결국 귀향을 포기한 충심은 브로커나 다름없는 기독교 선교단에게 거액의 대가를 약속하고 한국행을 결행하지만, 엄혹한 현실은 나아질 줄 모른다. 탈북자를 냉대하는 환경에서 그녀가 할 일이라곤 노래방 도우미 정도가 전부다. 남은 비용을 지불하라는 선교단 측의 채근에 몰려 그녀는 고달팠던 유랑 중에도 단호히 뿌리쳤던 성매매에까지 나선다.
궁핍한 현실에 몰려 두만강을 건넌 탈북 여성을 기다리는 건 온갖 폭력과 협잡이 판치는 ‘동물의 세계’다. 작가가 네 명의 탈북여성의 사연을 결합해 탄생시킨 ‘충심’의 수난사는 탈북자의 현실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막연한 이미지 혹은 무관심을 세차게 흔든다.
특히 작가는 탈북이 당사자의 실존적 선택을 넘어 인신매매, 기획입국 등 누군가의 ‘요청과 의도’에 의해 양산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나아가 ‘충심’에서 조선족 안마사 ‘메이나’, 탈북자 출신 한국인 ‘은미’로 끊임없이 이름과 신분을 세탁해야 하는 주인공의 처지는, 국적을 잃은 자에겐 그저 무참한 정글일 뿐인 근대 국가 체제의 이면을 폭로한다.
서늘해진 가슴을 덥히는 것은 인간 내면의 선과 온정에 대한 작가의 굳은 믿음이다. 충심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도움을 주는 자들은 다름아닌 사랑에 눈떠가던 꿈 많은 여고생을 정글 속에 던져버린 인신매매범들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설정이 단순히 읽는 재미를 더하려는 장치로 여겨지지 않는 순간, 이 소설은 르포 문학을 넘어선 보편적 문학성을 획득한다. 작가는 액자 구조 등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활용해 7편의 단편을 매끄러우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 하나의 장편으로 꿰었다. 아울러 북한과 조선족이 쓰는 말을 살려 쓰면서 작품의 현장성을 높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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