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3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카타리나(29ㆍ경기 안산시 수암동)씨.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만 믿고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그의 타향살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사고방식이 달라 시댁 식구들과도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한글을 배우러 인근 복지회관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수강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료 교육인 탓인지, 그의 눈높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바깥 일로 항상 피곤해 하는 남편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해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더군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는 왜 그리 긴장이 되는지…. 내과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엉뚱하게 산부인과를 찾았던 일도 있어요. 자꾸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활발했던 성격도 점점 내성적이고 소심하게 변해갔어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어색한 말투로 옛 기억들을 더듬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당시 상황들이 그려졌다.
시집살이가 힘들수록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음 놓고 연락할 수도 없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은 적이 부지기수다. 주부 입장에선 값비싼 통화요금이 큰 부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생활에 필수적인 휴대폰과 컴퓨터(PC) 등 정보기술(IT) 기기를 다루는 것도 그에겐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던 올해 3월, 경기 안산시청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외국인주민센터를 개원하니 관심이 있으면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센터가 가뭄 끝에 단비 역할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복지회관처럼 그저 그런 수준이겠지.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가볼까….’
이 같은 걱정이 기우(杞憂)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외국인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KT의 ‘IT서포터즈’ 회원들이 결혼 이민자들에게 아래한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IT서포터즈는 이 센터에서 언어와 문화가 낯설어 한국 생활 적응이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PC를 활용한 한글교육과 PCㆍ인터넷 기초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또 한국에 온 지 1~2년이 채 안 되는 결혼 이민자들의 귀화시험 준비를 돕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시험문제 풀이도 병행하고 있다.
“다른 기관의 한글교육 프로그램은 일반인 대상이기 때문인지, 외국인이라는 특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외국인주민센터는 학생들 수준에 맞춰 교육을 진행했어요. 또 친절하게 설명해줘 심리적으로도 안정된 분위기에서 한글을 배울 수 있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죠.” 인터뷰 초반 다소 긴장하던 표정과는 달리, 그의 얼굴에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타리나씨는 이제 IT교육이 진행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이면 ‘오늘은 또 뭘 배울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부터 설레죠. 이런 게 알아가는 재미인가 봐요. 한국말을 배우고 귀화시험 준비에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 주부들을 만나 동병상련할 때는 너무 행복해요.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요리도 인터넷 덕분에 이젠 전문가 수준으로 만든답니다.(웃음)”
IT교육 덕분에 그의 성격도 차츰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갖는 일도 잦아졌다.
교육을 열심히 받은 탓에 그는 이제 웬만한 교통수단이나 날씨, 영화, 쇼핑몰 등의 검색까지 할 수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안부도 주고 받는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인간관계를 넓혀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최근엔 디지털 사진을 편집하는 고급 기술(?)도 익히고 있다.
그는 요즘 마음이 바쁘다. 다음 달 남편의 여름 휴가 때 우즈베키스탄 고향을 함께 방문할 계획인데, 가족에게 전달할 ‘특별 선물’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씨가 공을 들이고 있는 선물은 그의 한국 생활 모습을 담은 이용자제작콘텐츠(UCC).
“고향에 계신 할머니에게 손녀 딸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만든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는 그에게 어머니나 다름 없는 존재이다.
작지만 소박한 꿈도 생겼다. “요즘 결혼 이민자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경제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들에게 제가 받은 만큼의 혜택을 돌려주고 싶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그들이 저처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IT 기술을 전수해 줄 겁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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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IT서포터즈'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와 정보통신기기 보급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주변을 찬찬히 둘러 보면 아직도 정보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많다. 특히 디지털 지식사회로 접어들면서 배움의 기회가 적은 고령자나 저소득층의 소외감이 깊어지는 게 현실이다.
KT의 ‘IT서포터즈’는 바로 이런 IT 소외계층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조직됐다. KT는 2007년 2월 ‘IT 지식 기부를 통한 전 국민의 정보기술(IT) 활용도 증대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모토 아래 IT전문가 400명을 선발, 1기 IT서포터즈를 발족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1기에서 활동했던 82명과 새로 선발된 318명으로 2기 IT서포터즈를 출범시켰다.
IT서포터즈는 ‘아름다운 재단’(이사장 박상증)과 함께 정보화 소외계층을 상대로 컴퓨터와 인터넷은 물론 각종 IT기기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소외계층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IT성능 진단이나 IT활용 교육도 하고 있다. IT서포터즈의 나눔 수혜를 입은 국민은 약 36만명에 달한다.
경기 서부지역 IT서포터즈 이은아 과장은 “IT의 혜택과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인터넷과 IT기기 활용 교육을 함으로써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IT를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IT서포터즈 접수 채널은 IT 활용증진과 성능진단 분야, 그리고 IT 역량배양 분야로 나눠져 있다. IT 활용증진과 성능진단 분야는 IT서포터즈 홈페이지(www.itsupporters.com)에서 예약접수 또는 전화(1577-0080) 상담 접수를, IT 역량배양 분야는 아름다운 재단 홈페이지(www.beautifulfund.org)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단, 특정 집단이 영리를 목적으로 단체 IT교육을 신청하거나 자격증과 취업 목적의 교육요청 등은 IT서포터즈 활동 영역에서 제외된다.
허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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