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커버스토리/ 아이스커피의 알싸한 유혹 여름을 접수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커버스토리/ 아이스커피의 알싸한 유혹 여름을 접수하다

입력
2008.07.21 01:20
0 0

덥다. 대책없는 기온과 습도가 짜증 낼 기운마저 빼앗는다. 이글거리다 못해 녹아내리는 햇볕이 두피를 달구고 아스팔트가 뿜는 복사열에 발걸음이 흐느적거린다. 따갑게 곤두섰던 신경도 물컹하게 데워져 정신이 몽롱하다. 차가운 무언가가 목젖을 쓰다듬고 식도로 쏟아지는 환영이 떠오른다.

‘생수? 너무 허전하잖아. 아이스크림? 헉, 목구멍이 막혀버릴지 몰라. 맥주? 아니, 아직 대낮이지. 탄산음료? 입에 남는 그 끈적함을 어이할꼬. 커피? 커다란 머그에 얼음을 듬뿍 담아… 그래, 아이스커피 한 잔!’

흔히 가을의 무광택 담갈빛으로 커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커피의 진짜 색은 여름에 드러난다. 로스팅을 막 끝낸 커피 원두의 번득이는 흑갈색은 얼음덩이의 투명한 근육질을 만날 때 비로소 그 윤곽을 보여준다. 성에 맺힌 글라스 속에서 얼음을 감싸고 검은 와류를 일으키는 그 마력을 지닌 빛깔이, ‘악마의 향기’로 불려온 커피의 본모습이다.

그런 미감에 취했거나, 그냥 카페인에 중독됐거나, 아니면 4,500원에 맘껏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은 것이거나, 무더위에 지친 도시인들의 손에는 하나씩 스트로가 꽂힌 플라스틱 잔이 들려있다.

그 속에서 찰랑이는 것은 하나같이 차가운 커피. 가을의 커피가 ‘낙엽, 그리움, 추억, 휴식, 인생의 쓴맛’이라면, 여름의 커피는 ‘선글라스, 정열, 해변, 미니스커트, 알싸한 유혹’이다. 여름에 즐기는 커피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 얼음 속에 가둔 뜨거운 맛

추출 방식을 불문하고 고체에서 액체가 되는 과정에서 커피는 뜨겁게 데워진다. 커피라는 음료가 여름철과 상극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커피를 식히기 위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는 것은 바보짓이다.

고유의 향이 날아갈 뿐 아니라 냉장고 속의 여러 음식 냄새를 커피가 흡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원한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얼음이 필요하다.

아이스커피를 만들 때는 커피의 농도를 진하게 해야 한다. 얼음이 녹으면 커피가 묽어지기 때문이다. 핸드 드립을 할 경우 곱게 분쇄한 원두를 쓰거나 원두 가루의 양을 평소보다 늘린다.

에스프레소일 경우에는 더블샷(원액을 두 배로 사용하는 것)을 한다. 찬물에 장시간 우려내는 더치 드립이라는 방법이 있지만 너무 긴 추출 시간(7~10시간)과 독특한 향 때문에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커피의 향을 살리면서 차갑게 추출하는 방법으로 아이스 드립이란 것도 있다. 핸드 드립 과정의 드리퍼와 서버 사이에 얼음을 담은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기구의 찬 얼음이 추출된 얼음에 의해 녹으면 가운데 관을 타고 내려오도록 만든 기구인데, 간단하면서도 커피의 향을 비교적 오롯이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라면 그냥 서버에 얼음을 담은 채 핸드 드립을 해도 된다.

■ 달콤하게 혀 끝에 감기는 맛

진한 커피를 즐기는 사람도 여름철엔 단맛이 가미된 커피를 찾곤 한다. 스트레소 해소에 단맛이 의외의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세상만사 다 귀찮던 짜증이 캐러멜 카페모카 한 잔에 날아갈 수도 있다.

집에서 달콤한 커피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슈퍼에서 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칵테일 잔에 떠 놓고, 에스프레소를 끼얹으면 그대로 아포가토가 된다.

우유와 크레머(거품 내는 기구)만 있으면 아이스라떼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차가운 라떼를 즐길 때 유의할 것은 우유의 온도. 평소(섭씨 60~70도)보다 미지근하게(섭씨 30~40도) 우유를 데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약 같은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커피광도 설탕 한 스푼만 섞으면 놀라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특유의 쓴맛과 단맛이 섞여 탁한 맛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새로운 제3의 맛이 탄생한다.

■ 알싸하게 오감을 유혹하는 맛

알코올이 함유된 커피도 여름철에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우리보다 더운 여름을 지내는 이탈리아와 남미 등에서도 술을 섞은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깔루아나 럼을 넣은 커피 한 잔에 장마철 눅눅한 마음이 상쾌해진다. 깔루아는 할인마트에서 3만원 이하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커피수입업체 제아테크의 김지활 대표는 새로운 레시피를 소개한다.

“소주병에서 한 잔 정도를 따라낸 뒤, 에스프레소 더블 하나를 그 병에 넣어 마셔보라”는 것. 소주에 커피라, 색다르면서도 친근한, 새로운 여름 커피가 탄생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도움말 김성숙 로스팅카페 자루 대표

유상호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커피, 신선한 보관이 맛·향 좌우

커피가 우유만큼 변질되기 쉬운 음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장에서 생산된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두커피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구입과 보관 과정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신선한 커피 맛을 원한다면 갓 볶은(로스팅된) 원두를 홀빈(분쇄 전 상태)으로 산 뒤 마시기 전에 바로 갈아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생두 상태로 커피를 사서 로스팅까지 직접 하는 마니아도 있지만, 좋은 생두를 구입하기도 쉽지 않고 로스팅 단계에서 발생하는 먼지도 감당키 힘들다. 따라서 로스팅숍에서 갓 볶은 원두를 산 뒤 집에서 믹서기 등을 이용해 마실 때마다 갈아서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커피의 적은 냄새와 습기, 그리고 열이다. 특히 분쇄한 뒤에는 급속도로 주변의 냄새와 섞이는 것이 커피의 성질이다. 따라서 홀빈 상태의 원두를 불투명한 밀폐용기에 담아 서늘한 곳에서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냉장고에 둔다면 원두 표면의 오일막이 응고되고 나쁜 냄새를 흡수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원두를 살 때는 2, 3주 동안 모두 소비할 수 있는 양을 산다. 3주가 지나면 향이 날아가고, 커피에 포함된 단백질과 무기질 등 유분이 변질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원두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소규모 로스팅숍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외국계 프랜차이즈의 경우 해외에서 로스팅한 후 국내에 들여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지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커피의 신세계 '로스팅 카페' 익숙한 맛·향은 잊어라

내 이름은 로스터(Roaster). 푸릇푸릇한, 아직은 커피의 맛과 향이 없는 커피콩을 볶는 기계다.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빈) 등 커피 전문 체인점에 익숙한 이들에겐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선 인기 스타올시다. 2년 전만 해도 한국에 100대 정도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전국의 커피공장 곳곳에 300대 이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원두 커피를 만들어내는 커피공장의 노동자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해외 커피 전문 체인점의 진한 원두 커피 향에 눈을 뜨면서 이땅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원두 커피의 신선함과 낮은 칼로리 함유량에 ‘웰빙 커피’ 혹은 ‘고급 커피’란 찬사를 보냈고, 일부 커피 애호가들은 집에서 프라이팬에 커피콩을 직접 올려 팝콘처럼 튀겨 먹으며 열렬히 환영했다.

나는 굉장히 까다롭고 변덕스럽다. 커피콩을 넣고 200도 이상 고온에서 20~30분간 열을 가해 맛과 향이 밴 황갈색 원두로 바꾸는 것이 커피 공정의 기본 원리지만 온도과 습도, 원산지별 커피콩의 특성, 가열 시간 등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정확한 매뉴얼이 없이 수백번 수천번의 공정을 거쳐 맛과 향을 창조해나가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커피라도 누가 볶고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남다른 커피, 새로운 커피를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말이다.

커피 애호가들이 나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원산지의 커피 맛을 소개해주기 때문이다. 케냐 AA, 과테말라 안티구아, 콜롬비아 수프리모, 에티오피아 이가체프, 브라질 산토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세계 각국의 커피들이다.

로스팅 카페에선 이렇게 수십 가지의 메뉴를 새롭게 만들어 고객에게 선사한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모카시다모는 은은한 꽃 향기와 균형 잡힌 신맛이 나고, 카페인이 적어 저녁에 마시기 좋은 커피다.

커피 고수들은 케냐나 탄자니아 산 커피의 강렬한 향을 즐긴다. 클럽 에스프레소의 로스터 최진식(45)씨는 “아프리카 커피는 쓴맛처럼 강한 향이 코끝을 찌르면서 한여름에 강렬하고 매혹적인 인상을 남긴다”고 말한다.

자, 이제 전국의 이름난 로스팅 전문 카페들을 찾아가 볼까.

■ 클럽 에스프레소

주 2회 일정량의 커피콩을 볶는다.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터키, 브라질, 예멘,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등 세계 35개국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일본에서 커피 공부를 하고 국내 첫 커피 아카데미를 연 마은식씨가 운영한다. 1층은 카페와 원두 판매숍, 2층은 작업실이다. 서울 부암동. (02)764-8719

■ 허형만의 압구정 커피집

8평 남짓한 좁은 공간은 꾸밈없이 소박하다. 국내 식품대기업에서 18년간 근무하며 커피 만들기 노하우를 쌓아온 허형만씨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커피를 만든다. 직접 볶은 원두를 판매하며, 커피 교육도 한다. 강하게 볶아 만들어내는 일본식 쓴 커피맛과 달리 부드러운 한국식 커피 맛을 추구한다. 서울 압구정동. (02)511-5078

■ 빈스빈스

15종류의 커피 맛이 일반 커피 전문점보다 진하다. 지난해까지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했지만 최근 직영 공장을 세웠다. 벨기에 와플과 우유 거품을 올린 카페 코레아노 등 달콤한 입맛이 20~30대를 사로잡는다. 모든 직원이 정기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다. 홍대, 용산, 죽전, 분당 등에 직영점이 있다. 서울 삼청동. (02)736-7799

■ 테라로사

한국 커피 전문가 1세대인 김용덕씨가 강릉에서 운영하는 커피공장. 세계 각국의 원두를 직접 수입해 레스토랑, 호텔 등에 판매하고 카페도 겸용한다. 바리스타가 추천하는 3가지 커피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커피 테이스팅 코스’가 유명하다. 강릉 구정면. (033)648-2760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19세기말 첫 도입… 고종이 '커피마니아' 1호?

1년 거래량 700만 톤, 돈으로 따져 600억 달러어치다. 하루에 마시는 양만 25억 잔. 커피는 세계인의 대표적인 기호식품이다.

커피는 언제 한국에 언제 들어왔을까. 커피는 동아시아의 오랜 차 문화가 있던 이 땅에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하다가 임오군란(1882년)을 전후해 각국 공사관이 들어서면서 도입됐다.

문헌상으로 고증 가능한 최초의 커피 음용 기록은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신 것이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안토니에트 손탁이 만든 양식을 즐겨 먹었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직접 볶은 원두커피에 맛을 들였다.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정관헌에서 사발로 음미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고 한다.

커피 때문에 고종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거액을 착복해 유배를 가게 된 러시아어 역관이 커피에 대량의 아편을 탔던 것. 평소와 다른 커피의 향기와 맛에 고종은 금방 뱉어냈지만, 그것을 꿀꺽 마셔버린 순종은 건강을 크게 해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커피숍 1호도 손탁이 열었다. 손탁은 고종이 마련해 준 러시아 공사관 입구(현재 이화여고)의 2층짜리 손탁호텔 1층에 레스토랑을 열고 커피를 팔았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도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조선에 왔다가 이곳에 머물면서 고종이 맛본 손탁 표 원두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커피는 사치품이자, 문인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이상은 ‘제비’ ‘쯔루’(학) ‘식스나인’이란 이름의 다방 3개를 차례로 운영하며 시와 소설을 썼다. 이효석은 수필 ‘낙엽을 태우며’에서 “갓 볶은 커피 냄새가 난다”고 했다.

커피 대중화를 이끈 것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이 가져온 인스턴트 커피다. 다방이나 시장의 노천 커피장사 등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는 생활 속에 정착됐다.

1968년 설립된 동서식품은 우리 손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커피믹스’로 통칭되는 한국산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현정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