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레이모 지음ㆍ변용란 옮김/사이언스 북스 발행ㆍ248쪽ㆍ1만3,000원
지도상에서 동서위치를 결정하는 기준점이자, 세계시각의 기준점이 되는 본초자오선의 설정은 19세기말 세계 과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만 해도 각 나라들은 자국 천문대를 기준삼아 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884년 워싱턴에서 본초자오선을 결정하기 위해 세계 25개국 인사들이 회의를 열었지만 영원한 앙숙인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은 표면화 됐다.
당시 전세계 선박의 72%가 영국의 그리니치를 표준으로 하는 지도와 시계를 사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프랑스 대표들이 자국지도에 ‘그리니치 기준 동경… ’식의 표기를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강짜를 부렸기 때문이다. 난감해진 일부 회원들은 이집트 피라미드나 예루살렘 사원, 이탈리아의 피사를 기준으로 삼자는 대안도 내놨지만, 25개 회원국 가운데 22개국이 그리니치 기준의 본초자오선에 동의해 오늘날 시간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설정됐다.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2003년 가을 영국 남부의 바닷가 마을 피치헤이븐으로부터 그리니치 천문대-케임브리지로 연결되는 본초자오선상 마을들에 대한 산책에 나선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선상에는 과학사의 변곡점이 될만한 인물과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6주간 이곳을 여행하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과학사의 뒷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경도 0도의 마을인 피치헤이븐에는 공룡을 발견한 지질학자 기디언 앨저논 멘텔박사의 고택이 있었고, 찰스 다윈의 집도 자오선에서 불과 4km 떨어져 있었다.
인간 두개골과 유인원의 턱뼈가 동시에 발굴돼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가 발견됐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됐으나 40여년 만에 ‘사기 두개골’로 밝혀지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필트다운도 이 길을 걷다가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대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살균의학의 창시자 조지프 리스터,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라이엘 등이 누워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인류가 지구의 역사의 끝에 겨우 등장한 존재임을 밝혀주는 지질학, 만물의 영장인줄 알았던 인간이 평범한 지구 생물중의 하나 임을 보여주는 진화론 등 유명한 과학사의 길을 걸으며 저자는 본초자오선의 획정이 상징하듯,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바라보라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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