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경기 성남시 하대원동 한 상가 4층에 있는 비천무술관. 100㎡ 남짓한 공간에서 초등학생 남녀 어린이 8명이 쌍절곤을 매섭게 돌리고 있다. 냉방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지만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한 켠에서는 짧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김정대(36) 관장이 어린이들의 동작을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겉보기엔 동네 무술관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김 관장과 8명 어린이들은 수강료를 매개로 무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아니다. 김 관장은 매주 토요일 무술관 부근 ‘천사의 집’ 어린이 8명에게 무료로 우슈를 가르치고 있다.
김 관장이 ‘천사의 집’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6년 11월. 부모와 헤어져 사는 이곳 어린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난 뒤부터다.
매달 한 번씩 체육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는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광진구에 있던 무술관을 정리하고 아예 ‘천사의 집’과 100m 가량 떨어진 상가 건물에 비천무술관을 새로 열었다.
김 관장은 “아이들에게 무술만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생활이 어려운 탓이었을까. 김 관장에 따르면, 처음 만났을 때 이 곳 아이들은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는 것’에만 익숙했다.
“베푸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부모 없는 애들은 버릇없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도록 예와 도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성남으로 오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런 김 관장의 마음을 아는 듯 아이들은 그를 잘 따른다. 박모(11ㆍ여)양은 “수업 시간에는 무섭지만 평소에는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고 자랑했다.
김 관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우슈(공인 5단), 합기도(5단), 무에타이(4단), 검도(4단) 등 무술 공인 단수가 무려 18단이다. 게다가 유소년 축구와 기계체조 지도자 자격증까지 갖고 있어 다양한 수업이 가능하다.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는 우슈를 배우지 않는 ‘천사의 집’ 어린이 32명에게 수영과 축구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근 체육시설 임대료 부담이 만만치 않을텐데도 김 관장은 “주변의 뜻 있는 분들이 편의를 봐 주셔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무술관 임대료도 꼬박꼬박 내고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도 사줄 수 있지만, 지난해 겨울은 매우 힘들었다. 2007년 11월 무술관을 열었지만 처음 한 달 동안에는 ‘부모 없는 아이들만 다닌다’는 소문 때문에 아무도 등록을 하지 않았다.
“참 힘들었죠. 서울에서 번 돈을 거의 다 까먹으면서 버텼어요. 이웃들을 만날 때마다 설득했더니, 두 세달 지나면서 제 마음을 헤아려주신 듯 수강생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어요.
특히 매월 세 번째 토요일에는 일반 수강생 아이들과 천사의 집 아이들이 모두 모여 떡볶이 파티를 열었는데, 서로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됐을 겁니다.”
아이들 못지 않게 ‘천사의 집’ 교사들도 김 관장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천사의 집’ 김경자 사무국장은 “김 관장은 아이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김 관장은 방학이면 전남 나주 고향 집으로 애들을 데리고 내려가 함께 지내고, 학기 중에는 생일을 챙겨주는 아버지 역할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 관장은 봉사하는 기쁨에 세월 가는 줄 모르지만, 아들이 혼자 사는 모습에 김 관장 부모의 마음은 편치 않은 모양이다. 김 관장은 “남동생이 결혼한 뒤에는 부모님의 성화가 더세졌다”면서도 “결혼보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가장 가까운 목표는 올해 11월 열리는 ‘서울시 아동복지시설 종합예술제’에 나가서 실력을 뽐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을 타지 않더라도, 사람들 앞에 서서 무술을 선보이는 것이 아이들이 자신 있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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