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혹시 기면병?

“밤잠을 충분히 자는데 직장에서 회의시간에 졸기 일쑤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졸다가 상사에게 혼났습니다.”

평소 밤잠을 설치고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모르지만, 밤에 숙면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낮에 심하게 졸리는 사람들이 있다. 잠꾸러기나 게으름뱅이여서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면병(嗜眠病ㆍNarcolepsy)일 수도 있다. 기면병 환자는 국내에 2만5,000~8만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잠을 즐기는 병?

기면병은 말 그대로는 ‘잠자는 것을 즐기는 병’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환자가 잠자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저항하기 힘든 수면이 되풀이되는 것으로 뇌 속의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중추신경계의 이상 때문에 생긴다.

기면병은 낮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리는 것은 물론, 감정 변화가 나타날 때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cataplexy)과 잠들 무렵이나 깰 무렵에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수면마비, 잠이 막 들 무렵이나 잠을 자다가 생기는 환각이나 환청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탈력발작은 웃거나 감정이 심하게 변할 때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머리를 떨어뜨리거나 쓰러지는 증세다.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물랭루즈’에서 기쁜 일이 있을 때 탈력발작이 나타나 쓰러지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면병 환자의 70%에게서 이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기면병은 대부분 청소년기(중ㆍ고교)에 처음 증상이 나타난다. 부모는 청소년기의 자녀가 졸음을 호소하면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인터넷 검색이나 게임을 하느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라고 생각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잠을 충분히 자는데도 낮에 심하게 졸리면 기면병을 의심하고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청소년기에 발병하는 병은 진단 시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후 두뇌 손상이 있을 때 과도졸음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수면다원검사와 입면잠복기 반복검사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는 밤에 잠을 자는 도중의 모든 일과 뇌파의 움직임, 근전도, 안전도, 호흡, 움직임 등을 측정해 잠을 평가하는 검사다. 입면잠복기 반복검사는 낮졸림증의 정도를 평가한다.

여성의 경우 생리가 시작될 때 기면병이 생기기도 하고, 갑상선 이상 등 몸에 특정한 병이 있을 때도 자주 나타난다.

■ 약물 치료로 정상생활 가능

기면병의 완치법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약물치료로 어느 정도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증상을 조절하거나 호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치료약으로는 낮에 과도하게 나타나는 졸음을 해결하는 프로비질(성분명 모다피닐)이 있다. 199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세계 최초의 주간 과다수면 치료제로 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중외제약을 통해 시판되고 있다.

메틸페니데이트 등 기존 각성제의 경우 수면 외의 중추에 작용해 의존성과 습관성, 심혈관계 부작용, 야간수면 방해 등의 부작용이 있는 반면, 프로비질은 수면에 관련된 중추에만 작용해 별다른 부작용은 없다.

기면증 치료를 위해서는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잠에 영향을 미치는 음주나 흡연을 삼가야 하며 밤새워 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 일할 때 더욱 졸리기 때문에 많이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다.

● 도움말=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수면클리닉 홍승철 교수 숨수면센터 박동선 원장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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