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년 일본 남부 큐슈에 불시착한 포르투갈인 페르낭 멘데스 핀투는 8000냥을 받고 그 지방 영주인 타네가시마 도키다카에게 조총 두 자루와 제조설비를 넘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총의 힘을 빌려 전국을 통일했으며 더 나아가 조선침략의 도구로 사용했다. 이 전쟁은 7년 동안 계속됐으며 우리의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와 건축물, 인명을 앗아갔다. 극동지역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한 최초의 국제전으로 평가되는 임진왜란은 포르투갈인이 무심코 넘긴 조총 두정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당시 포르투갈에 ‘수출통제제도’가 있어서 조총과 제조설비가 일본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은 일어났을까?
수출통제제도는 ‘조총 및 제조설비’가 ‘위험인물’에게 이전되는 것을 막아 전쟁과 테러를 예방하는 제도다. 주목할 점은 조총 뿐 아니라 조총제조설비까지도 통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재래식무기 제조업체를 등록제로 엄격히 관리하며 핵ㆍ생화학무기는 일절 제조하지 않는다. 반면 이런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설비, 즉 전략물자는 상당량 생산돼 이들 중 많은 부분이 수출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의 1%에 해당하는 37억8,000만달러 상당의 수출품이 전략물자에 해당됐다. 전략물자라고 하면 첨단 제품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범용제품 중에도 상당수가 전략물자에 해당된다. 가령 목욕탕 수량제어장치인 밸브도 치수와 재질에 따라 전략물자에 포함되는 품목이 있다. 생화학무기 제조공정에 밸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략물자의 경우 수출 전 정부에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정부는 허가처리과정에서 해당품목이 위험한 용도로 사용될 지 여부를 검토한다. 그리고 특이사항이 없을 경우에만 허가한다. 지난해 정부는 1,303건의 수출허가를 발급했으며 위험용도 정황이 포착된 1건은 거부했다. 이는 수출통제제도가 무역을 제한할 것이라는 일반의 오해에 대한 반증이다. 오히려 불운으로 우리 수출품이 재래식무기 또는 핵ㆍ생화학무기 제조에 사용돼 국제사회가 우리정부에 해당기업의 제재를 요구할 때 우리정부는 허가내역을 근거로 그 기업을 변호할 수 있다.
수출통제를 위반했을 때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제재는 상당히 가혹하다. 보잉 747 여객기로 유명한 미국의 보잉사는 허가 불이행으로 벌금 1,500만달러를 추징당했으며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일본의 유명 초정밀 측정장비 생산업체인 미쓰도요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비아 핵사찰 과정에서 자사 제품이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수출된 사실이 발각돼 일본정부로부터 3년간 무역금지 처분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굴지의 무역상사인 D사가 포탄제조설비 불법수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데 국제사회의 엄격한 시선 때문에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한 입장이다.
9.11 테러 이후 수출통제는 기후변화와 함께 양대 글로벌 아젠다로 등장했다. 우리 수출기업에게 수출통제라는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응전은 정부와 수출기업의 몫일 것이다.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수출통제제도를 구축, 수출기업의 제도이행을 도와야 하며 수출기업은 철저한 수출통제 준수로 응답해야 한다. 수출을 통한 당장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세계평화와 안보를 위해 선별적인 무역을 한다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세계시장에 심어줄 때다.
정재훈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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