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 랜덤하우스
글은 짧게 쓰기가 길게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원고지 3장에 써야 할 글을 원고지 30장으로 늘이는 것은 쉬워도, 30장으로 쓸 수 있는 글을 3장으로 줄이는 데는 수족을 잘라내는 것 같은 고통이 따른다. 더구나 신문에, 한정된 지면에 쓰는 글은 짧을 수밖에 없다. ‘퓰리처 상’의 그 퓰리처가 말했다는 신문 글의 원칙이 있다. “짧게 써라,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기억에 남을 것이다.” 쉽지 않다.
한국일보 오피니언 면에 연재되는 ‘길 위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글이다. 분량은 원고지 석 장. 하물며 글의 주제는 매일매일 다르다. 지금은 신문연재소설이 거의 사라졌지만 왕년에 수백 수천회씩 신문에 연재됐던 유명 작가들의 장편소설보다, 외람된 말일지 모르나, 그들의 후배들이 쓰고 있는 이 ‘길 위의 이야기’가 훨씬 쓰기 힘든 글일 것이라고 기자는 확신한다.
‘길 위의 이야기’는 2003년 3월부터 시작됐다. 한국 신문사상 이런 류의 연재물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소설도 칼럼도 아닌, 작가들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을, 단 원고지 석 장 분량으로 제한된 지면에 실어보자, 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첫 작가로 소설가 성석제가 나섰다. 매일 마감시간에 쫓기며 그런 글 쓰기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회유 반 협박 반으로 청탁하던 기자에게 딱 3개월만 써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길 위의 이야기’는 꼭 100회를 채운 김영하, 무려 2년반을 쓴 이순원, 그리고 시인 황인숙, 소설가 이기호를 거쳐 지금의 김종광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느 신문의 판박이 같은 뉴스, 목소리만 높은 칼럼보다 ‘길 위의 이야기’는 이들의 개성과 풍자와 감동이 있는 원고지 석 장짜리 글로 빛난다. 진정 ‘독(獨) 고(GO) 다이(DIE)’ 하는 글쟁이들이다. <독고다이> 는 이기호가 지난해 1월부터 13개월여 ‘길 위의 이야기’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다시 읽어봐도 촌철살인하는 글의 맛이 느껴진다. 독고다이>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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