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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통의 욕구와 소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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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통의 욕구와 소통의 역설

입력
2008.07.1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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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만큼 소통의 욕구가 강한 민족이 또 어디 있을까만, 특히 최근 들어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고도화에 힘입어 소통의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폭증하고 있음이 분명한 듯하다. 실제로 소통을 향한 우리네의 갈증이 참으로 남다름을 보여주는 현상들이 속속 표출되고 있음에랴.

유난히 소통욕구 강한 한국인

일례로 한국이 휴대폰 강국으로 떠오른 이면에는 한국인 특유의 소통을 향한 갈망이 내재해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농경사회에서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살던 시절, 동네 마실 나갔다가 이웃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자네 지금 뭐하나?” 하던 예전의 심정이나, 값비싼 전파 사용료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두드려 “너 지금 뭐하고 있어?” 묻는 요즘의 심정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더욱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서구인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주요 동기는 정보 검색에 있는 반면, 한국인들이 인터넷을 즐기는 주된 이유는 다종다양의 커뮤니티 활동에 있다는 것이다. 목적도 다양하고 기능도 다채로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한 자녀 외롭지 않게 키우기’도 하고, 대중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기도 하며, ‘벙개’를 통해 즉석 4인조 골프 회동을 하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이토록 왕성한 소통의 욕구를 기반으로 이젠 전설이 된 ‘아이러브스쿨’의 열기를 뒤로 하고, ‘싸이월드’에선 일촌 맺기가 한창이고, ‘아고라’에선 사이버 민주주의를 향한 네티즌들의 열정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셈이다.

한데 정작 누구와 소통하는지, 무엇을 소통하는지, 소통의 결과는 무엇인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왠지 모를 공허감이 느껴지면서 소통의 역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듯싶다. 소통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사이에 소통의 부재가 가장 선명하고, 거창한 명분에는 기꺼이 동참하면서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는 데는 못내 인색함은 물론, 소통의 결과에 대해서는 ‘우물 앞에서 숭늉 찾는’ 격의 조바심을 드러내온 우리들 아닐는지.

그러노라니 부부 간의 진지한 대화 시간은 평균 30분을 넘지 않고, 가족 관계 중 아버지와 아들의 심리적 거리감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지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1주일에 한 번도 채 되지 않는다는 현실에 이르면 슬며시 당혹감이 밀려온다. 예전 집 안에 있던 방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 채 공부방, PC방, 찜질방, 노래방이 번창하는 현실이야말로 소통의 역설을 가장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아닐는지.

덕분에 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 로터리에서 촛불을 치켜들며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낯 모르는 이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껴 보지만, 부인과 무슨 대화를 나눌지, 아버지와 어떤 화제를 공유할지 표류하게 되면서 소통의 갈증은 더욱 더 커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원활한 소통은 장기간에 걸친 훈련이 필히 요구되는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나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신중히 경청하는 능력, 서로의 견해 차이 및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한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하는 능력 모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몸에 배인 습관이어야 한다.

경청ㆍ갈등 조정능력 더 길러야

이들 소통의 기본 원리는 친밀한 가족관계에서부터 조직 내 인간관계는 물론 국가 간 협상력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통의 단절과 왜곡, 소통의 과잉과 억압 등으로 인해 이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룬 우리들로선,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의 뒤를 이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을 거쳐 ‘일본의 독도 도발’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기본을 절실히 요하는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늬만’의 임기응변식 소통이 아닌 소통의 진의(眞意)가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깊이 뿌리 내리길 기대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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