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회기 중인데 의원님이 어떻게 택시나 버스를 타겠습니까.”
공공기관 홀짝제 시행 첫날인 15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앞. 홀수 차량만 운행되는 날이지만, 국회의원들을 태운 짝수 번호의 검정색 대형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초고유가 시대에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홀짝제도 국회의원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홀짝제는 업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결국 국민이 손해”라며 “의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런 취재는 하지 마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공공기관 차량 홀짝제가 일부 특권층의 ‘나몰라 식’ 운행과 ‘얌체’운행으로 출발부터 삐걱리고 있다. 국회가 홀짝제의 예외기관이긴 하지만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할 의원들이 회기 중이라는 이유로 홀짝제는커녕 5부제조차 지키지 않아 “역시 국회의원”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이날만 해도 의원회관 앞에는 민주당 중진 모 의원의 검정색 체어맨 차량 등 중진 의원들의 짝수 차량들이 적지 않게 드나들었다. 일부 의원들은 공공기관 홀짝제가 이날부터 시행되는지 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의원회관 밖에서 대기 중인 차량들 중 일부는 에어컨 가동을 위해 의원이 나올 때까지 수십분 간 시동을 계속 켜 놓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기름값 명목으로 월 90만원 가량이 지원되는데, 그 때문인지 상당수가 일반 승용차보다 기름이 더 들어가는 대형 승용차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국회는 다음주부터 홀짝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회 관계자는 “회기 중에는 홀짝제가 의무사항이 아니다”라며 “탄력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도 꼴불견이긴 마찬가지. 일부 전남도의회 의원들은 이날 진입이 불가능한 짝수번호 차량을 몰고 왔다가 직원 제지를 받자 “도의회가 회기 중”이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 빈축을 샀다.
최근 뇌물파동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서울시의회는 홀짝제 시행을 앞두고 최근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 등의 편의를 위해 짝수번호 관용차량은 그대로 둔 채 업무용 차량 2대의 번호판을 홀수로 바꿔 눈총을 받았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상당수 단체장들이 걸어서 출퇴근했는데 시의원들이 편법을 동원하는 모습은 개운치 않다”며 “저런 모습을 보이면서 어떻게 시민을 대변하고 시정을 견제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반면 정부청사 및 일반 공공기관에서는 비교적 홀짝제가 잘 지켜졌다. 다만 홀짝제 시행을 깜빡 잊은 공직자들이 몰고나온 차량들을 청사 주변에 주차를 시켜놓는 바람에 주택가 골목길 등이 온종일 몸살을 앓기도 했다.
홀짝제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경기 지역 한 경찰서의 강력반 형사는 “탐문수사와 잠복근무를 위해서는 기동력이 생명이라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다녀야 한다”며 “취지에 어긋나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본연의 업무를 게을리 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경기도청의 한 직원도 “대중교통이 열악한 벽지에 살거나 외근 직원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어 이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박관규 기자 qoo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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