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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쇠고기와 쇳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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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쇠고기와 쇳가루

입력
2008.07.1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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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호주로 이민가요.”

촛불시위로 한국사회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때쯤 중학생 딸아이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에 비해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다소 심한 아이들간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모양이다. 아직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호주로 가서 살면 적어도 먹거리 공포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순진한 발상일 것이다.

어른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직장 동료들끼리 점심이나 저녁식사 메뉴를 정할 때도 평소 즐겨 찾던 곱창집이나 설렁탕집이 선정되는 빈도수가 줄어 들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주에 휴가차 호주 시드니에 갔더니 이곳에서도 한국의 촛불시위가 적지않은 뉴스거리가 되어있었다. 호주 사람들은 내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논쟁에 이은 촛불시위가 호주산 쇠고기 소비의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호주 언론들은 4월 1만3,626톤에 이르던 호주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물량이 5월에는 1만339톤으로 24%나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특히나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6월에는 더욱 떨어졌을 것이라면서 우려하고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호주산 쇠고기 3대 수출국으로 지난해 연간 수출물량은 8억달러였고 올해는 12억달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있지만 지금 추세라면 기대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내에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호주에서는 케빈 러드 총리가 이달 초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나 호주산 쇠고기 수입문제 등을 논의하고 이후 한국을 따로 방문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나 모두 무산되는 바람에 호주 육류 및 가축업체를 중심으로 실망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한미 양국의 FTA가 비준되면 호주는 한국과 FTA가 타결될 때까지는 미국 만큼의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라면서 호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압박하고있다.

문제는 한우 소비량도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우 가격도 20%가량 폭락한 상태고, 한우 쇠고기 매출도 대폭 감소하는 추세다. 농민들 뿐 아니라 한우 판매점, 음식점 등도 울상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쟁에 한우 농가와 판매자가 오히려 골병이 들고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다고 자랑하고 총리가 미국산 쇠고기 냄새나 맡고 다니는 것이나, 야당 대표가 한우로 점심 식사를 하는 사진이 언론에 실리는 것이나 모두 한심한 일이다. 먹거리마저 보수ㆍ진보, 혹은 여야로 나뉘는 건지…. 이 와중에 속타는 것은 민심일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논쟁을 지켜보면서 떠올린 것이 ‘녹즙기 쇳가루 파동’이다. 1990년대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창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녹즙기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한 녹즙기 업체가 경쟁업체를 제압하기위해 연구소에 의뢰를 했다. 어느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많이 나오는지를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조사결과 경쟁업체의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조금 많이 나왔고 이 결과는 언론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의뢰업체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두 녹즙기회사가 모두 문을 닫을 지경에 처했다. 소비자들은 “녹즙기에서 쇳가루가 나온다”면서 아예 녹즙 마시기를 거부했고 이 때부터 녹즙기 판매량이 급감한 것이다.

조재우 피플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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