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 창비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손익관리대장경)과 資金收支心經(자금수지심경)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장좌불립)이라고 불렀다 한다.’
김기택(51)의 시집 <사무원> 에 실린 표제 시다. 그는 오랫동안 대기업 계열회사의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자신만의 뚜렷한 시의 세계를 일군, 드문 시인이다. IMF 때인 1999년 그의 이 시집을 주제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그의 시의 현장은 멀리 갈 것 없이, 그가 다니는 회사가 있는 서울 한복판 동대문시장 주변이었다. 자신의 시구처럼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 대도시의 사무원으로 ‘장좌불립’한 김기택은, 그 세속적 고행의 한가운데서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또다른 눈으로 사무원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 자화상은 처절하다. 우리의, 너와 나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사무원>
시 ‘사무원’은 이어진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지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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