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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롱 갤러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잘못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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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롱 갤러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잘못된) 갤러리

입력
2008.07.14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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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 간 지속됐던 미술 시장의 호황을 두고 ‘아트 페어의 시대’였다고들 말한다. 역사는 이 시기를 뭐라고 기록할까. 필경 ‘시장과 가격이 주인공이 되는 바람에, 작품을 둘러싼 논쟁 같은 미덕은 거의 망각되고 말았던 불행한 시절’이라고 회고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불길한 호황의 파도를 타고 넘으며 새로운 실험을 벌인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실체가 없어진 ‘롱 갤러리(The Wrong Gallery)’가 대표 사례다.

2002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ㆍ48)이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롱 갤러리’는, 사실 정상적인 갤러리는 아니었다.

미국 뉴욕의 첼시 20번가에 멀쩡히 “롱 갤러리(‘잘못된 갤러리’라는 뜻)”라고 적힌 유리문이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잠겨있었고, 그 너머엔 정말 ‘코딱지만한 크기’의 전시공간이 있었을 따름이다.

전문적으로 작품을 사고팔지도 않고, 소속작가를 가진 것도 아닌 이 사이비 갤러리는, “예술적 경험을 위한 인큐베이터 노릇을 한다”는 묘한 말장난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채, 갤러리 안팎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성사시켰다.

혹자는 “호화찬란한 갤러리들이 즐비한 첼시에, 옛 이스트 빌리지의 저항적 예술 정신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생겼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따금씩 카텔란 일당은 자신들의 “뉴욕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에서 초청 개인전을 선보였다. 대개 장소 특정적인 실험작이었는데, 문짝 뒤의 작은 공간을 고려해볼 때, 실험적이지 않은 작업을 하기도 어려웠다.

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은 애덤 맥커웬의 전시였다. 작가는 유리문에 이렇게 써붙였다: “썩 꺼져, 우린 문 닫았어(Fuck Off We’re Closed).” 이런 식으로 개인전을 치른 작가는 무려 40명.

롱 갤러리는 아트 페어에도 참가했다. 2004년 제2회 프리즈 아트 페어에 참가한 롱 갤러리는, 작가 히라가와 노리토시와 함께, 미술 시장의 행태를 비판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아트 페어의 구내식당 옆에서, 두꺼운 책을 든 도우미가 ‘갓 싸놓은 똥’을 지키며,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식습관에 관련된 ‘작품’(=똥)의 제작 과정을 설명해줬던 것.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해엔 <롱 타임즈> 란 신문도 창간했는데, 딱 두 번 발행되고 말았다.

2005년 롱 갤러리는 세 들었던 건물이 통째로 팔리면서 폐점했다. 그러나 이 유령 회사는 갤러리 문짝을 영국 런던의 테이트미술관에 옮겨놓은 채 영업을 지속했다.

이후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독립적인 전시 기획을 맡아 액자 구조의 ‘전시 속 전시’를 만들기도 했고, 같은 해 열린 제4회 베를린비엔날레에선 총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첼시의 화랑가에 문짝을 달고 작은 공간을 운영하던 시절 같은 재미와 긴장감은 역시 느끼기 어려웠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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