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유족들 "이대론 못보내" 발인 미뤄

피격 사망 사흘째인 13일 밤 고 박왕자(53ㆍ여)씨의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3층 영안실 빈소는 낮까지 줄을 잇던 조문객이 줄어들면서 차분한 분위기였다.

남편 방영민(53)씨와 아들 재정(23)씨, 박씨의 언니(55) 등 유족 10여명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뒤늦게 찾아온 친지와 이웃의 문상만 가끔 이어졌다.

유족들은 당시 상황에 대한 철저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발인 날짜를 잡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들 방씨는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내드리냐”며 “발인날짜를 아직 확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황망한 상태에서도 딸의 사망을 모르는 박씨의 노모를 걱정했다. 박씨 언니는 “팔순 노모가 자꾸 고인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다”며 “숨진 건 모르고 사고만 난 줄 아는데, 사실을 알면 큰 변을 당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의 노모는 현재 전북 김제에서 박씨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유족은 물론이고 박씨와 오랫동안 교분을 맺은 이웃들은 사고 책임을 고인에게 돌리는 북측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또 정부에도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남편 방씨는 “북한 발표 내용을 전해 들으니 분통이 터진다”며 “(고인의) 키가 157㎝ 정도인데 아침 산책을 하면서 3㎞나 되는 거리를 20분 동안 뛰어 다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또 “아직 부검 결과도 안 나왔고, 같이 다녀온 일행도 ‘울타리를 넘어간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내용을 정부에서 발표해 줘야 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밤 늦도록 빈소를 지키고 있던 한 이웃 주민도 “(고인은) 고지식한 면도 있어서 넘어가지 말라고 하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사람인데 울타리를 넘어서 그런데 갔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며 사건 경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일부 네티즌의 철없는 행동으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남편 방씨는 빈소 주변 기자들에게 “유족들이 탈진했고, (상주가) 아직 어린 학생이니 가급적 취재와 촬영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방씨의 요청은 전날 인터넷 포털에 게재된 기사에 대해 일부 네티즌이 고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올리는 등 테러 수준의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빈소에는 12일 오전부터 13일 오후까지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승수 국무총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각계 인사가 방문해 유족을 위로했다.

12일 오후 6시45분께 한승수 국무총리가 찾았으며, 이에 앞서 오후 5시께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등이 방문했다. 13일에는 오후 2시께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과 임직원이 조문했으며, 곧바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황진하, 정옥임, 김성회 의원 등도 찾아와 조의를 표시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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