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박왕자(53ㆍ여)씨 피격 사망 사건의 목격자가 나타나고 북측이 우리 당국의 현장조사를 불허하는 등 ‘수상한’행보를 보이면서 사건을 둘러싼 의문이 더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정부도 북측의 사건 당시 설명에 의문을 강력히 제기하고 나섰다.
● 북측의 의도된 도발일까
북측이 우리의 현장조사 요구를 불허하고 오히려 우리측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부터가 미심쩍은 대목이다. 북측은 금강산 관광 중단 등 남북관계 파행도 불사한다는 태도다. 만약 우발적 상황에서 터진 경비병의 실수였다면 북측이 이토록 무리하게 나올 이유가 있느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북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사태 해결에 나설 수도 있을 텐데도 적반하장 격으로 나오는 것은 남과의 파행을 예상한 ‘의도적 도발’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경고사격 있었나
북측의 설명과 달리 의도성이 엿보이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북측은 경계지역을 넘어온 박씨에게 정지 명령을 하고 경고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공포탄과 박씨가 맞은 2발의 총탄 흔적을 포함하면 최소 3발이 발사됐다는 게 북측의 주장이지만 사건 목격자가 들은 총성은 단 두발 뿐이었다. 11일 오전 박씨를 목격한 이인복(23ㆍ경북대 2년)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년 여성이 북쪽으로 걸어 올라간 뒤 10여분 가량 지나 10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2발의 총소리와 비명이 들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총성이 난 방향을 보니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내가 있던 곳에서) 300m 가량 떨어진 숲속에서 군인 3명 가량이 뛰어 나와 쓰러진 사람이 살았는지를 확인하려는 듯 발로 건드리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박씨가 펜스를 넘어선 뒤 경고음도 듣지 못한 채 바로 피격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씨의 목격담은 박씨가 녹색펜스에서 북쪽으로 1.2㎞ 떨어진 기생바위 근처까지 갔다가 초병에게 발각된 뒤 다시 남으로 1㎞를 도주하다 펜스 200m 앞 지점에서 피격됐다는 북측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 20분만에 3 3㎞이동?
북측 설명대로라면 박씨는 호텔을 출발해 금강산해수욕장의 녹색철망펜스를 넘은 뒤 사망하기 까지 20분 동안 무려 3㎞~3.3km를 이동한 것이 된다. 비치호텔 CCTV에 찍힌 박씨의 호텔 출발시각은 오전 4시30분이고, 북측이 밝힌 박씨의 사망 시각은 오전 4시50분이다.
북한측 설명이 맞다면 박씨는 호텔에서 해수욕장 입구까지 706m, 이어 펜스까지 428m, 다시 기생바위까지 1,200m를 걸어간 셈이다. 여기에 초병의 제지에 응하지 않은 채 1,000m를 더 도주했다면 박씨는 최장 3,334m, 어림 잡아 약 3,000m를 20분에 주파했다는 계산이다.
시속 9~10km의 속도로 이동한 것인데, 이는 성인 남성이 숨이 가쁠 정도로 쉼 없이 뛰어야 가능한 속도다. 통일부 김호년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박씨가 50대 여성으로서 치마를 입고 백사장에서 산책을 했을 것이란 점에서 북측 설명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목격자 이씨 말대로 박씨가 펜스 너머 200m 정도까지 올라갔다가 바로 총격을 받았다면 박씨의 이동거리는 약 1,334m가 되고, 이는 20분간 시속 4km 정도로 이동한 것이어서 더 현실성이 있다.
● 허술한 펜스, 출입 잦았나
북측 경계지역을 차단한 높이 2m의 녹색펜스가 허술하게 설치된 점도 의문이다. 펜스는 해안까지 쳐진 게 아니라 중간에서 끝났고, 그 옆으로는 1.5~2m 높이의 모래언덕이 쌓여 있었다. 관광객들이 해안를 따라 걷다 보면 무심코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고 전날 다른 관광객들이 이 곳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나와 그동안 관광객들이 무시로 펜스 북쪽을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관광객들은 펜스 너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군사시설도 없고, 현대아산 측도 별다른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남북 양측 모두 관광객의 펜스 너머 북쪽 출입을 묵인했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북측의 느닷없는 태도 돌변에는 상부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초소 경비병의 독자적 대응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북한 당국이 남북간 왕래가 잦은 금강산 지역 등에 경계 강화 지침을 내린 상태에서 경비병들이 융통성 없이 독자 발포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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