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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입력
2008.07.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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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프티 지음ㆍ이민아 옮김/이레 발행·316쪽·1만1,000원.

1974년 8월7일 오전 7시. 게으른 사람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을 그 시각, 뉴욕 한복판의 도로가 마비된다. 갓 완공돼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세계무역센터빌딩(WTC)의 남탑과 북탑 사이에서 한 청년이 외줄타기 곡예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 출근하는 사람들도, 택시기사들도 차문을 열고 내려 무게 200kg, 길이 60m, 지름 2.2cm의 쇠줄 한 가닥에 몸을 의지해 지상 411m의 고공을 오가는 이 청년의 곡예를 넋을 잃고 올려다봤다. 주인공은 25세의 프랑스 청년 필리프 프티. 다음 날 세계 각 신문들은 프티의 곡예를 ‘세기의 예술적 범죄’로 명명하며 닉슨 대통령의 사임소식과 함께 1면 머리기사로 게재했다.

이 책은 경찰에 체포된 뒤“왜 그곳에 올랐냐?”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나는 오렌지가 세 개 있으면 곡예를 하고, 건물이 두 채 보이면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천진하게 대답했던 프티가 들려주는 WTC 정복기다. 그는 1968년 한 치과에서 읽은 ‘에펠탑보다 100m 높은 건물이 뉴욕에 들어선다’는 신문기사 한 꼭지에 ‘꽂혀’ 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그 계획을 들려주었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이랬다.“자네가 하는 소리는 아주 깜찍해. 하지만 자네는 완전히 꿈을 꾸고 있어” 그러나“나는 자유가, 모험이 그리운 것”이라고 늘상 말했던 프티에게 이 계획은 망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꿈이었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횡단(1971), 시드니항 철교 횡단(1973) 등 몇 차례의 기습공연을 통해 노하우를 쌓은 프티의 준비는 철저했다.

노숙자 행색을 하며 건물의 동선과 보안상태를 점검했고, 줄을 걸어둘 옥상 설치물을 찾기 위해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기자로 위장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건물에 대한 너무 상세한 정보를 알고있어서 직원들의 의심을 사 발각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깜짝 공연을 통한 유명세를 이용해 축재를 하거나 명성을 쌓았다면 그의 놀라운 곡예는 한갓 ‘해프닝’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연직후 영화제작, TV쇼 출연 등 쏟아지는 돈벌이 제의를 마다하고, 아이들을 위한 길거리 공연에 몰두하며 살았다는 후문은‘예술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집념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뺨 붉던 이 프랑스 청년은 이미 중늙은이가 됐지만 그의 희망은 재건된 WTC에서의 외줄타기 공연을 재연하는 것이라 한다.원제 ‘To reach the clouds’ (2002).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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