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사람들은 정치를 의술에 빗대어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동아시아 전통 의학에서는 심장, 간장, 폐장 등의 신체기관을 군주, 신하, 장군 등 국가기관에 비유했고 우리 몸의 기(氣)가 흐르는 경락은 나라의 몸인 국토를 흐르는 주요 강들에 비유되었다. 하급 의사(下醫)는 몸에 생긴 병을 다스리고 중간급 의사(中醫)는 사람을 다스리며 상급 의사(上醫)는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도 있다. 우리 전통 사상에서는 의술도 정치도 인술(仁術)이다.
사람ㆍ세상 다스리는 같은 이치
19세기 독일의 정치가이며 의사였던 루돌프 비르쇼는 두 분야 모두에서 큰 업적을 남긴 그야말로 큰 의사(大醫)였는데,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학은 확대된 의학”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처럼 의술이 작은 몸의 건강을 보살핀다면 정치는 나라와 세상이라는 큰 몸의 건강을 돌본다는 생각은 동서를 불문하고 폭 넓게 공유되고 있다.
조선의 7대 임금 세조도 몸소 <의약론(醫藥論> 을 지어 큰 몸(醫國)과 작은 몸(醫人)을 함께 다스리는 큰 의사이고자 했다. 여기서 그는 의사를 자질에 따라 여덟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최하등급인 살의(殺醫)에서 다섯 번째 등급인 광의(狂醫)와 두 번째 등급인 식의(食醫)를 거쳐 최상급인 심의(心醫)까지다. 의약론(醫藥論>
마음을 돌보는 의사(심의)는 병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병자가 원하는 것을 따르는 의원이고, 먹을거리를 돌보는 의사(식의)는 환자의 몸에 맞는 음식으로 병을 대하며, 미친 의사(광의)는 환자를 잘 살피지도 않고 약이나 침을 함부로 쓰는 의원이다. 죽음의 의사(살의)는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고 환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없는데다가 병을 이기려는 고집만으로 의리에 합당치 않은 짓을 하는 의원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와 촛불 시위로 집권 초기부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세조처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하지도 않았고 정치를 의술에 빗대어 생각하지도 않는다. 의료기관을 영리법인으로 전환하고 건강보험을 민간 기업에 양도하려는 정부가 정치를 사람 살리는 의술과 연관 지어 생각했을 리 없다. 그들에게 의술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서비스 상품일 뿐 국가운영의 모델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정치도 경제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두 달 넘게 촛불을 밝히며 대화를 요구한 시민에게는 그 주장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지만 경제를 살릴 대기업 총수들은 아무 때나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다. 지금의 여당은 지난 정권을 경제를 포기한 정권이라고 조롱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정치를 포기한 경제 권력의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있지 않다.
정치가 의술과 함께 사람을 살리는 기술(인술)이라면, 나라와 세상을 구하는 최상급 의사인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국민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마음의 의사(심의)여야 한다. 그리고 먹을거리의 안전을 지켜 국민의 몸에 맞는 음식만을 공급하는 의사(식의)이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민의를 말하고 소통을 말하던 그가 지난 두 달 동안 보여준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말 바꾸기와 표리부동의 행태를 보면, 그는 차라리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국민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없는데다가 국민을 이기려는 고집만으로 의리에 합당치 않은 짓을 하는 최하급 의사(살의)에 가까워 보인다. 그도 아니라면 국민의 마음을 잘 살피지도 않고 함부로 공권력을 휘두르는 미친 의사(광의)일 수도 있다.
최상의 의술은 '위로하는 마음'
문제는 나라의 의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주치의를 바꾸듯 그렇게 쉽게 갈아치울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어떤 의사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글귀로 아픈 국민의 심정을 전하려고 한다. “나는 아주 가끔 환자의 병을 치료해 주었고, 그보다 더 자주 아픈 사람을 보살펴 주었으며, 언제나 그들을 위로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진정성이 담긴 위로의 말 한마디가 아닐까?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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