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금강산 바람 쐬고 온다더니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11일 밤 박왕자(50ㆍ여)씨 시신이 안치된 서울 신월7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박씨의 남편 방영민(53)씨와 대학생 아들 재정(23)씨는 아내와 엄마의 죽음이 믿기 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애써 눈물을 감추려 했으나, 슬픔을 참지 못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남편 방씨는 "도저히 믿기 지 않는다. 새벽에 금지된 경계선을 넘었다고 비무장한 민간인, 그것도 중년 여성에게 총격을 가할 수는 없다"며 정부에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작은 회사에 다니는 방씨는 전남으로 지방 출장에 나섰다가 이날 오후 2시30분께 현대아산을 통해 비보를 들었다. 이날 저녁무렵 부랴부랴 상경해 국과수로 달려간 방씨는 사랑하는, 그러나 어느새 생을 달리한 아내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들도 여름 방학을 맞아 모처럼 상계동 주공아파트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다가 날벼락 같은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유가족은 이날 오후 6시15분께 속초병원을 떠나 오후 10시30분께 국과수에 도착한 박씨 시신 곁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얌전하고 후덕한 친구를 잃은 박씨의 이웃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웃 주민은 "박씨는 평소에도 혼자 장을 보러 다닐 정도로 내성적이고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었다"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새벽에 경계선을 넘어가 총격을 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씨가 사는 아파트 미화원도 "복도를 청소하고 있으면, 언제나 '고생 하신다'며 물 한 잔을 건넬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며 "그렇게 착한 분이 돌아가시다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고 허탈해 했다.
박씨와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던 관광객들은 남쪽에 와서야 피격 소식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저녁 7시께 서울에 도착한 최영숙(47ㆍ여)씨는 "금강산에서 출발할 때 박씨 일행이 안 와 뒤차로 오는 줄 알았다"며 "북에선 전혀 모르다가 통일전망대를 넘어와서야 전화가 오기 시작해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앞으로 어떻게 금강산을 갈지 두렵다"고 말했다. 같은 버스를 탄 권태진(55)씨는 "박씨 일행은 4명이었는데, 이틀 전에 잠실운동장에서 출발할 때도 30분 정도 늦게 와 왠지 불안했다"며 "같이 돌아왔더라면 좋았을 텐테"라며 안타까워했다.
시민들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회사원 김인식(38)씨는 "북한이 민간인을 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면서도 "새벽 4시에 아주머니가 산책을 하다가 군 경계 지역에 들어갔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한편, 시민단체는 진보와 보수진영에 따라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보수성향의 뉴라이트전국연합 관계자는 "민간인을 그냥 붙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차별 사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분명 정도를 넘은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진보연대 관계자는 "사망하신 분과 관련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남북이 이 일로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허정헌기자 속초=이대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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