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 지음/김영사 발행ㆍ686쪽ㆍ3만6,000원
“태평양은 정말 태평할까. ‘전혀’ 아니다. 그것은 ‘만들어진 제국의 작품’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적도, 참치잡이의 주요 어장인 폰페이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7달러를 주고 시킨 참치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연유다. 흔히들 남양군도의 일부로만 알려져 있는 이 풍광 좋은 섬에서 민속학자 주강현(53)씨의 시선은 먹음직스런 ‘마구로(참치회)’ 너머에 가 있다. 대양을 여행할 배치고는 작은 편인 해양연구원의 배 ‘온누리’로 3,000여 마일을 달려, 무풍 지대 적도를 관통하는 항해에 대한 기록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필수 코스로 들르는 하와이 폴리네시안 테마 파크 또한 주씨의 그물코를 벗어날 수 없다. 1899년 태평양 식민지의 원주민들을 붙잡아 와 ‘인간 전시품’이라며 공개했던 것과 유사한 서구의 오만을 우리가 답습하고 있지나 않은지 따지며 독자를 잡아 끈다.
우선, 18세기 영국인 쿡 선장이 들른 이후 고래 사냥과 설탕 산업의 기지이자 천혜의 휴양지로만 기억돼 온 와이키키 해변의 역사를 되짚어 간다. 중국인, 포르투갈인 등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이 유입해 간 과정에서 한국은 큰 몫을 차지한다. 책은 “원주민을 천대했던 서구인들과 똑같이 원주민들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던 한인의 인종주의적 태도(122쪽)”를 초기 이민들의 생활상을 소개하며 지적한다.
책은 무풍의 열대 바다 곳곳에 스민 역사는 물론 배에서의 음주 등 선상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순항한다. 2차대전 이후 원폭 실험장으로 전락, 아직도 피폭자들이 보상 소송을 벌이는 마셜 제도의 비키니섬은 서구의 탐욕이 빚은 결과를 웅변한다. 이 모든 질곡에도 적도의 산호섬과 화산섬은 말없이 웅자를 뽐낸다.
눈만 뜨면 외치는 ‘아태(亞太)’란 무엇인가? 책은 정치ㆍ경제적 이해 관계는 물론 인간의 삶에서 멀어져 가는 학문 또한 경계한다. 저자는 “학제니 통섭이니 하는 말 따위를 구두선으로 내걸 필요가 없다”며 “인간과 신과 자연의 합일을 생각해 온 원주민들의 원초적 삶에 귀 기울”이라고 요청한다. 말리노프스키나 레비스트로스 등 구미권 민족지학자의 서구적 시각을 여과없이 수용해 온 우리 학계에 대한 맹성을 촉구하는 것 역시 그 같은 문제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여행 지역 곳곳에서 기독교와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와 깊은 증오가 확인된다. “십자가, 나는 너를 증오한다/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문명을 가지고 떠나라/ 그리고 그대가 있던 그 곳으로 돌아가거라”(478쪽) 쿡 제도의 시인 마카우티는 <선교사> 라는 시에서 울부짖었다. 과거와 역사적 기반을 무시당하는 데서 비롯한 소외감이 그들의 현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지적이다. 선교사>
책은 서구의 오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서구 문명의 지칠 줄 모르는 승리의 행진이 다른 문화와 민족에게는 재앙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확인시켜 준다. 나아가 서구의 학문 세계는 자신들의 파괴 행위를 타락과 멸망이라는 말 대신 ‘사회 변동’이라는 말로 희석, 언어의 폭력을 자행했다며 경계한다.
저자는 말미에서 서두의 마구로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21세기 초반의 한국은 대대적인 참치잡이의 대가로 어업 쿼터 할당량에 따른 어획료만 납부할 뿐, 지구의 어종 소멸이라는 원초적 책임에 관해서는 면제 받고 있다는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말마따나 “참치 통조림에 경배 드리고 마구로 횟감에 예의를 갖출 일”이다.
탐사 보고서에 버금갈 만큼 내용은 실증적이며, 모두 530여장의 사진을 실은 한 편의 시원한 화보집으로서도 손색 없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 <등대 여행> 등에서 확인된 저자의 사진 실력은 책을 한 권의 독특한 여행기로 변모시켰다. 해수와 이산화탄소와의 관계 등 해양과 관련한 과학 상식들도 군데군데 삽입시켜 놓은 책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즐거운 공존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등대> 제국의>
장병욱 기자 aj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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