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고은(28)씨의 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 <무중력증후군> (한겨레출판 발행)이 출간됐다. 대학 졸업반이던 2003년 제2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젊은 작가의 첫 장편은 기발한 상상력과 찰진 입담으로 무장하고 있다. 무중력증후군>
소설 속 지구에는 달이 주기적으로 하나씩 늘어나는 이변이 일어난다. 대학 졸업 1년만에 직장을 여덟 군데나 전전하고 있는 부동산 텔레마케터인 ‘나’를 비롯, 지구 전체가 새로운 달의 출현에 크게 동요한다.
범죄와 자살이 증가하는 가운데 지구 중력을 벗어나 달로 삶터를 옮기겠다는 무중력자 그룹이 세를 불려가고, 무중력 공간을 콘셉트로 한 산업이 성행한다.
잡다한 병에 시달리며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나’의 주위에도 변화가 인다. 어머니는 달구경 간다며 오랫동안 가출하고, 소설가 지망생이던 친구 ‘구보’는 무중력 섹스를 체험할 수 있는 기구를 팔아 성공을 거둔다. 사법고시생인 형은 아버지 몰래 요리사 자격증 따기에 몰두한다.
취재차 ‘나’에게 접근한 매력적인 여기자는 ‘나’의 사소한 병증들에 ‘무중력증후군’이란 선정적 병명을 붙여 화제를 일으키곤 ‘나’를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다.
환상성 짙은 이 소설엔 여러 겹의 풍부한 현실적 알레고리가 엮여있다. 달의 증가라는 기현상에 너나없이 들썩대고 쏠려다니는 군중의 모습은 소위 ‘냄비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비이성적 열정을 앞세우는 무중력자 그룹은 종말론을 맹신하며 파국으로 치달았던 역사 속 신흥 종파들을 연상시킨다.
위기 상황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우는 자본주의 체제와, 무중력증후군이란 ‘이름’이 탄생하자 평범한 잔병치레마저 중병 취급되는 부조리한 담론 생산 구조에 대한 유쾌한 냉소도 읽힌다.
10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들을 만난 윤씨는 “늘 새로운 충격에 열광하고 목말라하는 모습은 결핍과 외로움을 숙명처럼 지니고 사는 우리 인간의 본능인 듯싶다”면서도 “작품 결말에서 주인공의 변화가 암시하듯 군중 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잡는 자세가 소중함을 말하려 했다”고 말했다.
작품 착상 계기가 재밌다. “2년 전쯤 달밤에 과자 봉지 뒤 성분표를 유심히 읽었다. 문득 달도 파는 상품이라면 성분표를 어떻게 쓸까 궁리하며 홈페이지에 적어봤다.
이로부터 달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처음엔 단편으로 구상했지만 막상 쓰자 원고지 500매 분량이 됐고, 여기에 재차 쓰고 싶은 얘기를 덧붙여 지금의 1,000매짜리 장편을 만들었다고.
윤고은씨의 본명은 고은주. 동명의 선배 소설가를 존중, 어머니의 성을 앞에 붙인 새 필명을 만들었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독특한 발상,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문장을 좋아한다는 윤씨는 <웹진 문장> 9월호와 계간 <너머> 가을호에 각각 단편을 발표한다. 너머> 웹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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