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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수전 손택,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가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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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수전 손택,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가이기를…

입력
2008.07.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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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집 <해석에 반대한다> (1966) 등을 통해 ‘새로운 감수성’에 기반한 예술 이해를 주창한 문화평론가, 소설ㆍ에세이ㆍ각본ㆍ연출을 섭렵하며 다수의 저서 및 연극ㆍ영화 작품을 남긴 전방위 예술가,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맹렬히 질타한 사회운동가. 이 모든 것의 이름인 수전 손택(1933~2004)의 마지막 소설과, 아들이 쓴 그녀의 말년 투병기가 동시 출간(이후 발행)됐다.

<어머니의 죽음> (이민아 옮김)은 손택의 외아들이자 자유 기고가인 데이비드 리프(56)가 손택이 2004년 3월 백혈병 판정을 받아 그해 12월 별세할 때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엔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않은 손택의 인간적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희망이 아닌 것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낙관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어머니는 거의 언제나 우울과 싸우고 있었다. 잠에서 깨면 곧바로 의기소침한 상태를 털어 없애기 위해 아무 얘기고 맹렬한 속도로 마구 쏟아 내었다.”(125쪽)

그런 어머니에게,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애써 외면하며 희망의 말을 건네는 일이 고통스러웠다고 아들은 토로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미련하다싶을 만큼 치유에 대한 믿음에 매달렸던 이유를 알고 있다. 75년 말기 유방암, 90년대 말엔 자궁육종 판정을 받는 등 모친의 중년 이후는 암 투병의 연속이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 난국을 극복했다고, 그는 자신의 경험과 어머니 주치의들의 전언을 통해 증언한다.

저자는 투병의 고통에 비해 손택의 임종은 평화로웠다고 전한다. 또 모친이 나고 죽은 곳이자 가장 중요한 활동 터전이던 뉴욕 대신 파리 몽파르나스를 장지로 택한 이유도 적었다.

손택의 마지막 소설 <인 아메리카> (임옥희 옮김)는 그녀가 자궁육종을 앓던 1999년에 발표돼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들 리프씨는 앞의 책에서 그녀가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인지하고도 이 작품을 끝내려 치료를 미뤘다고 증언했다.

19세기 배경의 이 장편은 폴란드에서 ‘국민배우’로 손꼽히던 여배우 ‘마리냐 잘레조브스키’가 조국에서 누리던 영예를 과감히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금 최고의 여배우로 인정받는 인생 역정을 그리고 있다. 실제 프랑스 사회주의자 푸리에가 주창한 이상적 공동체를 꾸리고자 지인들과 함께 도미한 폴란드 여배우 ‘헬레나 모드제예브스카’가 마리냐의 모델이다.

0장~9장까지 총 10개 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손택은 대화, 방백, 지문 등 희곡의 형식을 대거 활용하는 한편, 편지글과 일기 형식을 가미하는 등 다채로운 형식 변주를 시도한다. 작가인 ‘나’가 폴란드의 한 호텔 만찬을 묘사하면서 그곳에서 자기 작품에 등장시킬 인물들을 캐스팅하는 방식을 취하는 도입부부터 소설의 개성을 한껏 드러낸다.

미국의 당대 최고 배우인 에드윈 부스-링컨 암살범의 친형이기도 하다-가 자기 상대역을 맡은 마리냐에게 건네는 말을 연극적으로 처리한 마지막 장과 관련해선 손택이 그 파격적 형식을 떠올리고 무척 기뻐했다는 후문이 있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추동된 19세기 미국 이민사와 오늘날 브로드웨이를 있게 한 미국 연극사 위에, 도도하면서도 견결한 한 여배우의 삶과 사랑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이 장대한 소설은 무엇보다 앞서 소설가로 불리길 바랐던 손택의 작품 세계에 화룡점정으로 남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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