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경기 상승세가 약화되고 물가 급등세는 지속돼 정책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럴수록 한은에 본질적으로 부여된 임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의 본업이 ‘물가안정’임을 감안할 때,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언제쯤 올릴까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5.00%)으로 동결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어려운 국내 경제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도 특히 물가를 강조했다. 그는 “고유가 등 외부 영향으로 물가가 그동안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 여진이 끝나지 않았다”며 “동결중인 공공요금 등 가격인상 보류 품목들을 감안하면 향후 상승압력이 높아 인플레 기대심리가 더해지면 임금인상 등 2차, 3차의 파급효과가 우려된다”고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올해 안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당장은 경기에 찬물을 끼얹거나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높이는 부작용 때문에 움직이기 어렵지만 8월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한다면 이를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현석원 금융경제실장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달러화가 본격적으로 강세를 보인다면 한은이 금리를 인상할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빠르면 9월 정도 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물가↑, 경상수지↓ 길어질 것”
이 총재는 최근 우리경제가 겪는 어려움들이 상당히 오래 갈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의 경우, “전기ㆍ가스요금 등이 하반기 인상될 경우, 한은의 하반기 상승률 전망(5.2%)보다 실제 물가는 더 오를 수 있다”며 “물가는 관성이 있어 올해 5% 가까웠다가 내년에 갑자기 한은의 유지 목표치(3%) 근처로 떨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빨라야 내후년에나 3% 전후 물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외환위기 이후 올해 첫 적자가 예상되는 경상수지는 “유가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내년 역시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단기외채 급증에 더한 순채무국 전환 우려와 관련해서는 “외국인의 주식매각 자금이 빠져나가고 경상수지 적자 등 요인이 복합돼 외채가 늘고 있으며 조만간 우리나라가 순채무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그렇다고 국가신인도가 갑자기 떨어진다거나 ‘위기’로 일컬을 사안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총재는 최근 한은의 개입 이후, 환율이 급변동하는 데 대해 “시장에 쏠림이 있을 때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율은 당국이 결정할 수 없는 시장 가격변수”라며 “환율정책만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은 총재의 금리인상 시사 발언 영향으로 국고채 등 이날 채권금리는 0.02~0.03% 상승 반전했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ㆍ91일물) 금리도 0.03%포인트 올랐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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