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어 한 해 베이징 생활을 하게 되었다. 텐안먼(天安門) 광장을 비롯한 베이징 시내는 언뜻 보기에 평범한 풍경들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두 모습이 뚜렷하다. 느린 자전거와 빠르게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물결, 금방이라도 폐차장에 들어가야 딱 맞을 낡은 자동차와 고급 승용차, 먼지 풀풀 날리는 보도블록 공사에서부터 고층건물 공사 중인 아스라한 타워 크레인(도시가 온통 공사 중이다)….
한국의 과거 모습 비슷하지만
다시 말하면, 우리로 치면 1970년대 쯤의 모습에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 결국 낡은 것을 헐어버리고 새롭게 바꾸려는 몸부림인데, 이 모든 것들은 베이징 올림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TV는 연일 성화 봉송 화면으로 채워지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문명적 승차’ 등 예절을 계도하는 글과 말이 범람한다. 세계 사람들에게 문명적인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캠퍼스 분위기도 비슷하다. 영어 뉴스가 캠퍼스에 넘실대고(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자존심 상한 일이지만), 곳곳에서 청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트레이닝복 차림의 올림픽 자원봉사 학생들이 활보하고,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의 행진 연습도 가끔 목격되었다. 학교의 모든 학사 일정도 5월 말까지 끝내도록 조정했다.
우린 벌써 오래 전에 치렀는데…구경꾼으로 지켜보는 것도 흥미가 있었다. 더러, 이러면 더 좋을 것을 왜 저럴까, 왜 진작 해놓지 못했을까…나름대로 ‘만만디(천천히)문화’를 흠 잡기도 했다. 그 중엔 알아맞힌 것도 있는데, 예를 들면 지하철역 표시 기둥에 역 이름을 쓰지 않고 ‘地鐵 Subway’이라고 써 놓았다. 그러나 새로 개통하는 지하철 표시 기둥에는 내 우려대로 역 이름을 표기했다.
인터넷에서는 티베트 사태와 관련되어 성화 봉송 행렬과 충돌한 사건이 보도되지만 TV에는 오직 오성기의 붉은 물결뿐이다. 이들에게 먼 과거에 ‘텐안먼 사태’가 있었고, 가깝게는 1월 대폭설 재앙, 티베트 사태 등 잔치 앞에 액땜으로 치부하기에는 가혹한 사건들이 연신 터졌지만 흔들림 없이 올림픽이라는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쓰촨 성 대지진으로 질주하던 자동차가 또 한 번 크게 요동했다. 지진 지역의 어느 고교생의 말대로 “1시간 반 만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피해 현장이 연일 생중계되면서 애국을 앞세워 애도와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총리 노인이 홀로 살아 남아 울먹이는 아이에게 “국가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라는 말로 13억 중국인을 감동시켰다. 대재앙이 13억 중국인을 하나로 결집시킨 셈이다.
대지진 지역의 복구가 완료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피해 현장에 천막학교가 들어서고 수업이 재개되었다. 싸구려 자재와 부실공사로 유난히 학교 교사의 붕괴 사고가 많아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컸지만, 이 문제는 덮고 다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올림픽 성화 봉송도 지진 희생자 애도 기간에 사흘간 중지되었을 뿐이다. 최근에는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여행객을 통제하고, 베이징 인민들의 도시 출입도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잔치’를 위해 묵묵히 인내하고 있다.
우린 무엇을 위해 하나가 되나
중국 네티즌들은 이번 지진에서 살아남은 어린이가 올림픽 성화대에 점화하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올림픽위원회 관계자는 그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그들이 8월 8일 오후 8시 8분에 열리는 축제에 과거의 아픔을 끄집어 낼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국 대학생들이 강의실을 꽉 채웠다. 그들은 한국을 통해 화려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의 꿈에 어떤 색을 칠해 줄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또,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나가 될 수 있을지, 미래 없이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고 있지 않는지.
채길순 소설가ㆍ명지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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