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에 대한 널리 퍼진 편견 중 하나는 그들이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제 나라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익숙한 환경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고, 이는 북한 주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들은 나름의 적응 방식을 터득해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20년 이상 한국과 북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직 '서방 정보 요원(Western Intelligence Officer)'으로 자신을 소개한 미국 작가 제임스 처치(가명)가 10일 서울 광화문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14일 국내 출간 예정인 자신의 데뷔소설 <평양의 이방인> (원제 A Corpse in the Koryo)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평양의>
평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이면의 북한 고위 관료 간 권력 암투를 파헤치는 인민보안성 수사관 '오(O)'를 주인공으로 한 이 추리소설은 2006년 미국 출간 당시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머리맡 필독서"(워싱턴포스트) 등 북한 상황에 정통한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이 책은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폴란드어 등 7개 언어로 번역됐다. 처치는 '수사관 오 시리즈(Inspector O Novels)'란 이름으로 이 책을 비롯한 3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참가해야 할 회의가 있어서 한국에 온 김에 여러분을 만났다"고 기자들과 인사한 처치는 정보 요원 활동 당시 경험을 묻는 일체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날 답변과 책 출간 후 CNN 등 외신과 가진 인터뷰 등을 종합해보면 그는 1940년대 출생해 70년대 한국 근무를 시작했으며, 최소한 85년 이후 북한에 첫 파견됐다.
CNN과의 인터뷰에선 그가 90년대 북미간 핵협상 테이블에 참석했다고 소개됐다. 이날 간담회에서 북핵 협상에서 맡았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처치는 "흔히 정보 요원 하면 스파이를 생각하는데, 정보 요원의 일은 생각보다 다양하며 정부 간 긴밀한 협조 하에 업무를 보기도 한다"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고 꼭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처치는 "몇 년 동안 북한 상황을 공부했는데도 막상 평양에 도착해 고려호텔에서 보내는 첫 밤엔 그 동안 익힌 모든 것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면서 "하지만 발전된 사회에선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순수함과 사심없는 환대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속엔 정보 요원으로 활동하며 겪은 특별한 경험, 다양한 경로로 만난 남북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한국에 대한 애정이 한데 엮여 있다고 말했다. 대신 핵, 미사일, 위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는 피했고, 자기 활동 이력이 드러날 수 있는 세부 사항엔 허구를 가미했다고.
처치는 "오랫동안 정보 보고서를 쓰던 습관 때문에 소설 쓰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면서 "내가 많은 임무를 수행하고 각별한 추억을 남긴 나라에서 내 책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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