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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 창단 20주년 공연 앞둔 상임지휘자 임헌정 "단원들 잘 만나 하다보니 벌써 19년 흘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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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 창단 20주년 공연 앞둔 상임지휘자 임헌정 "단원들 잘 만나 하다보니 벌써 19년 흘렀네요"

입력
2008.07.10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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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창단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상임지휘자 임헌정(55ㆍ서울대 교수)은 그 20년 가운데 19년을 함께 했다. 국내에서 한 지휘자와 한 오케스트라가 함께 보낸 가장 긴 시간이다. 임헌정의 부천 필인 동시에 부천 필의 임헌정인 셈이다.

부천 필은 인구 80만의 소도시에 소속된 오케스트라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간의 강한 결속력에서 나오는 일사불란한 앙상블과 도전적인 레퍼토리로 국내 정상 악단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특히 99년부터 4년간 이어진 말러 교향곡 전곡 시리즈는 음악계에 ‘말러 신드롬’을 낳았다. 지난해부터는 창단 20주년에 맞춰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를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브루크너 시리즈 세 번째 공연을 끝내고 오는 22일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앞둔 임헌정을 만났다. 휴대전화가 없는 그에게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 같다” 했더니 “집과 학교, 연습실 외에 가는 곳이 없어 찾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내년이면 상임지휘자 취임도 20주년이다.

“사람을 잘 만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는 단원들을 믿었고, 단원들도 나를 믿어줬다.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세월가는 것도 몰랐다.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좋은 목사는 좋은 교인이 만든다고 하지 않나. 단원들이 허물을 덮어주고 신뢰해준 덕분이다.”

- 그래도 무작정 덮어주기야 했겠나.

“내가 보여준 것, 그리고 보여줘야 할 것은 악보 공부 열심히 하는 것과 비전 제시, 딱 두 가지 뿐이다. 지휘자가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따라오겠나.”

- 말러를 빼고는 부천 필의 역사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술의전당에 공동 주최를 제안했는데 허락이 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솔직히 첫 공연에 100명이나 올까 했다. 스타 협연자도 안나오는 지방 교향악단의 공연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면으로 해보고 싶었다. 사람 오는 것만 생각하면 언제 새로운 것을 해보겠나. 그런데 유료 관객만 1,000명이 왔다.”

- 취임했을 때 기억이 나나.

“89년 부천시립합창단 지휘자인 최병철 교수가 이야기를 해왔을 때 ‘부평이요?’ 그랬다. 단원 20명에 연습실도 없었다. 지하 연습실이 생겼는데 시궁창 냄새가 지독했다. 쥐가 나와서 연습이 중단되기도 했고, 모기약 뿌려가며 했다. 이름없는 작은 도시 오케스트라에 형편없는 봉급에…. 정말 음악 하겠다는 단원들의 열정 하나 뿐이었다.

- 19년간 어떤 철학으로 이끌어왔는 지 궁금하다.

“취임 초기 단원들과 청평에 캠프를 갔다가 지금은 타계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앤토니 질리오티를 만났다. 오케스트라를 맡았다고 했더니 ‘오케스트라는 팀웍이다. 이기적인 단원은 절대 안된다. 인격이 중요하다’고 충고해줬다. 공정한 평가와 팀웍, 이 두 가지가 지금껏 지켜온 원칙이다. 음악의 성패는 마음에 달렸다. 서로 양보하고 헌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들이 모여도 소용이 없다.”

- 연습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데.

“그렇지 않다. 다만 새로운 곡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경우가 잦았을 뿐이다. 생전 처음 하는 곡인데 4, 5번 연습해서 공연할 수는 없지 않나. 그건 불량식품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횟수가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제대로 연주)할 만큼은 (연습을)해야 한다. 이번 20주년 공연 때 말러 교향곡 4번을 하는데 처음에는 전체 리허설을 15~20번쯤 한 것 같다. 이번에는 5번 정도 한다.

- 말러 뿐 아니라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 베베른의 작품을 초연하는 등 유독 새로운 것을 많이 했다.

“음악팬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찾는다. 기호도 계속 바뀐다.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음악가의 사명이다. 그리고 음악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요즘 다들 너무 사탕만 준다. 사회 전반이 너무 감각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어서 걱정이다. 영양실조에 걸릴 것 같다.”

- 부천 필 동호회 ‘부사모’나 말러 동호회 등 열혈 팬들이 많은데.

“솔직히 아직 관 파트에는 빈 자리도 여럿이고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왔기에 부천 필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소리는 분석이 불가능하다. 마음에서 나오는 혼연일체의 소리를 음악팬들도 느끼는 게 아닐까.”

- 브루크너 시리즈는 어떤가. 관객들이 말러에 비해 좀 어려워하는 것도 같다.

“신앙심이 깊었던 브루크너의 머리 속에는 성당의 오르간과 성가대 소리가 있었다. 정신을 고양시키고 정화시키는 순수한 소리다. 브루크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정신적 안정감을 주는 작곡가다. 잔소리 같고 따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재미가 없어도 봐야 하는 책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다른 곳에서 오라는 제안도 여러 번 받았다고 들었다. 부천 필과는 언제까지 갈 것 같은가.

“지휘자가 한 곳에 오래 있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같이 타협해서 성을 쌓아버리면 부작용이 더 크다. 다음 지휘자를 생각해야 한다. 다만 부천에 콘서트 전용 홀을 짓기로 돼있는데 예산 문제로 늦어지고 있다. 좋은 홀은 하나 만들어놓고 싶다.”

- 다음 계획은 뭔가.

“2010년이 말러 탄생 150주년, 2011년이 서거 100주년이다. 관련해서 여러 계획이 있다. 그리고 고전음악을 더 잘하고 싶다. 내년 취임 20주년 공연 때는 베토벤과 브람스를 하려고 한다. 다시 보니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여 내는 소리, 그 생명력과 에너지가 참 강하다. 평생 누군가의 가슴에 남을 수 있는 그런 연주를 하고 싶다.”

- 서울대 작곡과 시절 동아콩쿠르에서 대상도 타고 했는데 이제 작곡은 안하나.

“줄리아드 졸업 이후 전혀 안했다. 영원한 숙제다. 뭐 아직 젊으니까. 하하.” 공연 문의 (032) 320-3481

김지원 기자 eddie@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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