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할 겁니다. 쇠고기협상에 대한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으로, 어려운 축산 농민 위해 현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운천(사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9일 스스로를 ‘백의종군한 이순신’에 비유했다. 한달 전 쇠고기정국 수습을 위해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고 지난 7일 대부분 장관의 사표는 반려됐지만, 정 장관은 한미쇠고기협상의 책임자로서 암초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 장관은 지난 4개월여의 공직 생활에 대해 “다른 장관보다 훈련을 몇 배나 많이 받았다. 내년 예산도 만드는 등 1년간 할 일을 다했다.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집중과 타이밍이 좋았다”며 “아쉬움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신뢰를 깬 사람이 됐다. 국민과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불신이 깊은 사람에게 신뢰해달라고 하면 믿겠느냐. 4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솔선수범했는데 결국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벤처농업계의 신화 창조자’로서 MB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입성할 당시만 해도 정 장관의 이런 낙마는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물론 행정경험의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성공한 농업CEO 다운 농정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 역시 1시ㆍ군 1유통회사 설립, 농장에서 공장ㆍ매장을 거쳐 식탁으로 이어지는 농식품 유통고속도로 구축 등 핵심과제를 제시하며 ‘돈벌 수 있는 농정으로 틀을 바꾸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농정의 패러다임을 생산에서 유통으로 바꾸겠다는 건 참다래유통사업단의 성공을 이끌어낸 그의 전문분야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 장관은 농업유통개혁은 손도 못댄 채, 쇠고기 등에 잘못 업혔다가 허무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취임 초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와 한미쇠고기협상 등 악재가 터지면서, 그 동안 농정은 사실상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물러나는 정 장관에 대해 “쇠고기협상이 농식품부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도 아닌데, 결국에는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도 있다. 정 장관의 입장에선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생소한 분야였고 업무파악조차 안 된 상태에서 협상 결과에 그의 의지나 구상을 반영할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농정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소신이 부족했다는 점만으로도 책임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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