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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존 로버츠, 통합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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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존 로버츠, 통합의 리더십

입력
2008.07.10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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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은 연방 대법원이다. 낙태, 동성애, 종교, 민권 등 가치의 문제에서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회의 이념 지형이 달라진다. 때문에 미국의 보수파와 진보파는 자신들과 성향이 같은 대법관을 한명이라도 더 포진토록 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해왔다.

2005년 9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50세의 보수주의자 존 로버츠를 대법원장에 지명했을 때 민주당의 우려는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로버츠는 당초 보수와 진보가 4대 4로 갈려 있던 구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왔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됐었다. 인준 절차를 기다리던 중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타계하면서 대법원장에 다시 지명된 것이었다. 따라서 오코너의 후임이 보수파로 채워지면 로버츠가 이끌 대법원은 확실하게 보수쪽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이 수장을 맡아 3차례의 회기(1년)를 끝낸 지금 진보파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특히 6월 말로 끝난 2007~2008년 회기 동안 대법원의 판결은 진보파에게 결코 재앙이 아니었다. 관타나모 수감자에게도 민간법정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허용한 판결이나 개인의 총기휴대 권리를 인정한 판결 등은 진보주의자들을 만족시켰다.

게다가 지난 회기 의견이 5대4로 날카롭게 갈린 사건은 17%로, 그 이전 회기의 33%에 비해 절반 가량 뚝 떨어졌다. 대신 만장일치나 7대2, 6대3으로 안정된 판결이 주류를 이뤘다. 초당파적 분위기가 성숙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념 성향이 쉽게 변할 리 없는 대법관들이“서로를 포옹하는”분위기는 어디에서 연유할까. 시사 주간 타임은 그 답을 통합을 지향하는 로버츠 대법원장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대법관 회의의 주재자로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을 내는 대법관들에게 법리적 판단이나 주장을 최소한으로 좁히도록 설득했다. 한명이라도 더 다수의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논지였다.“그래서 7표를 가질 수 있다면 5표보다 더 좋지 않나요.”그가 동료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헌법적 해석이 갈리는 사건보다는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사건을 먼저 심리하도록 회의를 이끄는 것도 로버츠 대법원장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는 심리 때 의제를 선점할 수 있는, 대법원장의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을 십분 활용했다. 물론 미 대법원은 대선을 앞둔 회기에서는 안정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렇더라도 로버츠 대법원장의 개인적 자질과 리더십이 대법원의 초당파성을 견인하고 있음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미 대법원의 심리 장면을 떠올리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두 동강난 우리의 현실을 겹쳐보았다. 2달간 이어지고 있는 촛불 집회의 와중에 극단적 정파성만이 드러나고 있다. 한쪽은 국민적 저항 운동을 짓밟으려는 무자비한 탄압을 촛불이 밝히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정권을 타도하려는 검은 음모가 촛불에 숨겨 있음을 공격하고 있다. “식품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수준을 깨닫지 못했던”지도자는 두 번이나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여전히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거리에서도, 정부 내에서도 화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강도 높은 투쟁에 대한 기대가 넘치는 한 편에서 보수의 단결을 외치는 선동이 요란하다. 언제 이 대립은 끝날 것인가. 치열한 가치관의 대결조차 포용의 지도력으로 녹인 미국 대법원장이 부러울 뿐이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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