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철 / 소나무
1965년 7월 9일 소설가 남정현(75)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긴급구속됐다. 그가 ‘현대문학’ 그해 3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분지(糞地)’가 하루 전날인 7월 8일 작가 자신도 모른 채 북한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됐기 때문이었다. 남정현이 이듬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변호사 한승헌, 문인 안수길 이어령 등이 변호에 나서면서 사건은 떠들썩해졌다. 남정현은 징역 7년이 구형됐고, 1967년 6월 ‘분지’가 “반미적, 반정부적 감동을 일으키게 한다”는 이유로 징역 6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이다.
분지 사건 이후 군사정권 아래서의 필화는 이어졌다. 1970년 담시 ‘오적’을 발표한 김지하, 1979년 중편소설 ‘순이 삼촌’을 쓴 현기영, 1987년 장시 ‘한라산’을 쓴 이산하 등이 잇따라 구속됐다. 그 작품이 수록된 책들은 물론 금서로 묶였다. 서구문화사를 알고 싶다면 교황청의 금서 목록을 읽어라는 말이 있지만, 1970, 80년대 한국의 문화ㆍ정신사는 그대로 금서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 책은 변혁운동의 추진력 그 자체였다.
그 책을 쓴 이들을 ‘지옥에 간 작가들’이라 할 수 있을까. 서양사학자 주명철(58)의 <지옥에 간 작가들> 에 따르면 지옥은 프랑스혁명 이전 문인들이 갇혀있던 바스티유 감옥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19세기 라루스 사전의 ‘지옥’ 항목에는 실제로 ‘도서관에 자리잡은 구역으로서, 읽으면 해롭다고 생각하는 책을 두는 비공개 장소’라는 뜻풀이가 있었다고 한다. <바스티유의 금서> 등의 저서를 통해 미시사, 신문화사의 방법론으로 권력과 책, 즉 압제와 자유사상의 충돌을 연구해온 주명철이 쓴 이 책은 18세기 프랑스의 검열과 금서의 문화사다. 바스티유의> 지옥에>
서양사학계에서는 이 같은 연구방법론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모양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필화와 금서의 역사는 아직 단편적 일화나 회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주제를 다룬 단행본도 찾기 힘들다.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아닐까 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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