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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0> 짚신 신고 설산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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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0> 짚신 신고 설산을 넘다

입력
2008.07.1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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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산( 金山)을 넘겠다고? 포기해. 그 산은 새들도 못 넘어. 선녀들만 넘을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선녀산이라고 불러. 산꼭대기에서 입을 열면 산신령이 노해서 숨이 막혀 죽게 하고 사람들이 이야기만 해도 산신령이 노해서 산사태를 일으키는 곳이야". 자진산 입구 마을에 있는 노인들은 대설산(大雪山)으로도 불리는 자진산을 넘겠다는 홍군의 계획을 이렇게 만류했다.

루딩(瀘定)교를 건넌 홍군은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대설산맥의 설산을 넘어 북으로 진군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이동해 티베트 경계를 따라 북상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대설산 동쪽의 북상로를 통해 쑹판(松潘) 쪽으로 진격하는 방안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안은 인구가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식량조달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고, 세 번째 안은 국민당군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힘들더라도 설산을 넘기로 했다.

"설산을 넘을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산골에서 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두꺼운 옷도, 몸을 덥힐 술도 살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을 주민들의 귀띔으로 구할 수 있던 것이 고추와 생강이었다.

몸에 열이 나도록 이들을 넣고 끓은 물을 한 대접 먹이는 것, 나무를 깎아 지팡이를 만들도록 지시하는 것, 그리고 설맹을 방지하기 위해 눈을 감쌀 헝겊조각을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이 5,000m의 설산을 넘기 위해 지도부가 병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 장정 최악의 고난, 대설산 행군

산을 오르는데 꼬박 6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새벽 일찍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느 산과 같은 녹지대가 나타났다. 사기가 높아진 홍군은 노래를 합창했다.

"야, 눈이다." 두 시간쯤 걸어 산허리에 이르렀을 때 선발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방출신으로 눈을 처음 본 병사들은 넋을 잃었고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했다. 아직 이들은 이 눈이 자기들에게 가져다 줄 시련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오르자 갑자기 안개 속이었다. 주위가 흐릿해지더니 봉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초여름인 6월이었는데도 찬 기운이 엄습하면서 광풍이 몰아치고 눈발이 날리며 우박이 쏟아졌다. 대오는 순식간에 병사들의 고함과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됐다. 시련의 시작이었다. 우박이 그치고 태양이 다시 보였지만 추위는 더욱 심해졌다.

신발이 없어 짚신을 신은 일부 병사들은 짚신사이로 들어오는 눈 때문에 발이 얼기 시작했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워졌다. 고산증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방에서 병사들이 쓰러졌다.

숱한 전투를 앞장 서 지휘한 린뱌오(林彪)도 여러 차례 까무러쳐 호위병들에게 실려 산을 넘어야 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생사고락을 해온 경호원도 쓰러져 직접 마오의 부축을 받으며 산을 넘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산을 내려왔을 때 심하게 기침을 했다(곧 그는 결핵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게 된다).

여자들은 대설산을 넘은 뒤 모두 달거리가 끊겼다. 많은 병사들은 대설산이 장정 중 그 어느 전투나 고난보다 힘든 최악의 경험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오후 3시, 선발대가 정상에 도달한데 힘을 얻은 병사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뒤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쉬웠을 뿐 아니라 즐거웠다.

한 병사가 눈 위에 헝겊 조각을 놓고 그 위에 앉아 썰매를 타기 시작했고 모두를 그를 따라 환호의 소리를 지르며 썰매를 타고 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자진산의 선녀들은 이 같은 광경을 조용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려다보고 있었으리라.

■ 장족 가이드와 홍군

야안(雅安)을 떠나 바오싱(宝興)으로 향했다. 바오싱은 대설산을 넘으려면 지나야 하는 작은 마을이다. 그나마 대설산 부근에서 가장 큰 마을로 여기에서 점심도 먹고 정보도 수집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도착해 마을에 들어서 작은 다리를 건너가자 오른 쪽에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에는 홍군과 관련된 두 개의 작은 조각이 보였다. 하나는 빨래하는 아낙을 홍군이 옆에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주며 도와주는 조각이었다.

안쪽에 있는 또 다른 조각은 홍군복장을 한 여자가 칠판에 홍군의 이야기를 써 놓고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앞에는 나무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는데 머리가 허연 중년 남자가 그 의자에 앉아 조각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마치 70년 전으로 돌아가 여자 홍군이 바오싱 사람들을 모아 놓고 홍군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곳에 앉아 그러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로 더 들어가자 커다란 붉은 기념탑이 나타났고 뒤에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은 점심시간이라 닫혀 있었다. 기념탑 조각은 머리에 두건을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고 다른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자진산을 안내한 이 동네의 장족 안내자가 홍군에게 자진산을 넘는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이 지역은 장족지역이고 홍군이 자진산을 넘도록 도와준 것은 자진산을 잘 아고 있는 장족 안내자였다.

저 안내자는 최근의 티베트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졌다. 기념탑에는 또 말을 끌고 눈에 발이 빠지면서 설산을 오르는 홍군의 모습이 부조형식으로 사면에 돌아가며 새겨져 있었다.

식사를 하고 대설산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길이 엉망이었다. 강을 막아서 댐 공사를 하고 있었다. 댐을 앞에 두고 두 길이 나타났다. 왼쪽 길이 원래 우리가 가려던 길인데, 오른 쪽으로는 '개선된 길'이라고 씌어 있었다.

물어볼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왼쪽 길로 들어섰다. 댐 공사 현장이 아래로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산길을 올라가자 길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공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이 길이 대설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맞는데 댐 공사와 자진산 공원 공사로 길이 폐쇄됐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또 다시 좌절인가?

■ 저 대설산을 바라보며

할 수 없이 갈림길로 돌아와 오른쪽 길로 다시 올라갔다. 강을 가운데에 두고 아까 갔던 길과는 반대쪽 길이다. 강을 가운데에 놓고 원래의 길은 강 왼쪽, 이 길은 오른 쪽으로 나 있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사트럭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차 경적을 울려대고 내려서 한참 항의를 한 뒤에야 이들이 길을 비켜주어 지나갈 수 있었다. 엉망인 비포장 산길을 한참을 달려갔다.

그러기를 얼마일까. 작은 마을이 오른 쪽 언덕 위에 나타났다. 설산이 보이고 그 앞에 작은 라마사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아온 대설산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길가에 작은 장족 가게가 있어 기념탑 가는 길을 물었다. "차는 들어가지 못하니 요 밑에서 걸어서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기념탑 주변 길 바닥에 부서진 하얀 조각들이 즐비했다. 자세히 보니 홍군의 모습이었다. 최근 낡은 기념탑을 부수고 새 것을 지으면서 버려진 옛 기념탑의 잔해였다.

붉은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0m 정도의 기념탑 뒤로 댐을 만들고 있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 푸른 산이 보이고, 다시 그 산 뒤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자진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난의 현장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기념탑에는 '중국노동자농민 홍군 제1방면군'이라는 큰 글씨와 '자진산 넘음 기념'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대설산을 향하고 있는 쪽 탑 하단에는 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자진산을 넘는 홍군들을, 그 반대쪽에는 자진산을 넘은 뒤 환호하는 홍군을 조각해 놓았다.

원래 계획대로 자진산을 넘어가 보지는 못하더라고 더 올라가서 자진산의 눈이라도 밟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강을 건너 자진산 쪽으로 가는 길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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