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싱어송라이터, 라디오 디제이, 문화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성기완(41)씨가 세 번째 시집 <당신의 텍스트> (문학과지성사 발행)와 두 번째 솔로앨범 <당신의 노래> 를 함께 발표했다. 당신의> 당신의>
두 작업물의 연관성은 제목에만 머물지 않는다. 둘은 성씨 작품으론 드물게 사랑ㆍ연애를 모티프로 삼고 있고, 나아가 시와 음악의 연계성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시집은 남성인 시적 화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상처를 추스르는 과정을 그린다. 그 잘 짜여진 구성이 한 편의 연애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개개의 시편들도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시어로 사랑의 격정과 이별의 비탄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너와 오랄하고 싶어/ 너의 빨간 암술을 헤치고/ 노란 수술을 빨고 싶어// 당신은 화장실에 버려진 생리대/ 지켜지지 않은 백만 년 된 약속/ 팬티 속에 차고 다닐래/ 나도 당신처럼 생리할 거야// 피흘리며태어날거야’(‘꽃’)
성씨의 연애시를 남다르게 하는 것은 그가 첫 시집부터 지속해온 언어ㆍ형식 실험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집 복판에 놓인 ‘당신의 텍스트 4’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가 쓴 일기와 메모, 연인에게 보낸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시기별로 뒤죽박죽 배열된 이 시를, 시인은 ‘하이퍼 스파팅(hyper-spotting)’이라고 명명한다. ‘스파팅’에 대한 설명이 시 속에 있다. ‘글을 쓴 시각, 공간의 정황을 글 속에 기입하고/ 그 글의 느낌을 그 정황과 연결시키는 거야.’
작성 일시ㆍ배경이 명기된 일기, 메모, 메시지가 다른 수록시와 연결돼 그것들이 창작된 정황을 보여준다. 이 시를 허브(hub) 삼아 시집 전체가 일종의 하이퍼텍스트가 된다.
성씨는 “문명 도시 내의 늪지대 같은, 시가 부글거리며 탄생하는 기원을 시집 속에 배치하고 싶었다”면서 “시가 쓰여진 상황적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한번 발표되면 늘 현재형으로 읽히며 신화화되는 연애시의 관습을 깨려 했다”고 말했다.
시인 특유의 리드미컬한 시어도 빛을 발한다. ‘징징징/ 쟁쟁쟁/ 둥둥둥 둥// 기타를 쳐요/ 북을 울려요// 너른 들에 밀실 짓고/ 밀실 안에 너른 들/ 침대 위엔 수십만 인파/ 하늘로 트인 사운드 궁전// 보세요 저 스릴/ 진저리 치는 쇠줄/ 놋 심벌cymbal 가죽 드럼/ 사랑하는 당신과의 텐 thousand kiss// 사랑해/ 사랑해/ 예예예/ 사랑뿐야’(‘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시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노래”라고 말한 시인은 이 작품을 예로 들어 음악적 영감이 시로 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징징징 쟁쟁쟁 하는 첫마디를 떠올리고 리듬을 살려 반복해 흥얼거린다. 그렇게 말의 풍차가 돌면서 먼지와 물결을 일으키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면 시가 된다.”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 리더로 잘 알려진 시인이 <나무가 되는 법> 이후 9년 만에 낸 솔로앨범엔 시집 수록시 2편을 포함한 4편의 시낭송이 포함돼 있다. 잔잔한 배경 음악에 육성을 얹는 관행을 따르는 대신 목소리 위주로 디지털 편집한 방식이 독특한 미감을 자아낸다. 나무가>
성씨는 수록시를 낭송한 두 트랙에서 낭송자의 목소리를 분할해 다양하게 조합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처럼 레고 블록을 무작위로 끼우는 듯한 방식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미적 수법이기도 하다.
“연애와 이별의 각 국면마다 감정에 충실하며 썼던 시들을 끼워맞춘 것이 이번 시집이다. 특정한 주제의식 아래 일관되게 뽑힌 글이 아니라 굉장히 다른 맥락의 텍스트가 접속함으로써 더 신선한 미적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좋은 음악 역시 멜로디와 리듬의 무작위적 조합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수록곡 <마흔 이끼> 는 나이가 들면서 시인의 시야에 이질적인 것들이 끼는 경험에서 비롯한 노래다. ‘눈동자 속에 핀 이끼를 감상하네/ 방울방울 세월의 샘물 같은 흔적들/ …/ 새하얀 이 불안/ 무엇을 쓰고 또 지울까/ 마흔의 눈동자 이끼가 그림을 그리네’ 성씨는 “이번 시집과 앨범은 내 연애의 총정리”라면서 “젊은 날을 되돌아보며 내 시야의 이물들이 그간의 과오와 욕망에서 피어난 이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흔>
그는 2005년 2월말부터 진행해온 <세계음악기행> (EBS라디오)을 다음달 말로 끝내고 10월 ‘블루스의 고향’ 서아프리카 말리로 떠나 3개월간 체류한다. 세계음악기행>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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