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2월 퇴임을 앞두고 재임 기간의 대통령 통치기록을 사저인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을 두고 청와대와 노 전 대통령 측 간 공방이 격해지고 있다. 8일에 이어 9일에도 청와대는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불법적 무단반출'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반면, 노 대통령 측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흠집내기"라고 맞서고 있다.
청와대와 노 전대통령 측에 따르면 참여정부 임기 말 청와대는 기록을 봉하마을로 이관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고 1월 18일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을 특정회사에 의뢰, 제작했다. 이어 한 달 뒤 기존의 e지원 시스템을 가동중단한 후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을 봉하마을 사저에 설치해 대통령 통치기록을 반출했다.
이를 놓고 빚어진 논란은 대체로 2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불법성 여부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외부에서 대통령기록물을 보는 장치를 설치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하고 자료를 무단 반출한 사건으로 국가기록물이 수없이 복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열람권한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발생한 임시적 상황"이라며 "국가기록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토록 돼 있는 만큼 퇴임 이후에도 e지원을 통해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청와대는 불법성을 제기하면서 e지원 시스템의 반출을 위해 '일반적 회사 형태를 갖추지 않은' 페이퍼 컴퍼니에 제작을 맡겼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노 대통령이 보관 중인 기록이 원본이냐 사본이냐, 청와대에 남겨진 자료가 새 정부의 청와대 운영에 불편을 줄 만큼 쓸모없는 자료인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 측이 2월 기존의 e지원 시스템의 가동을 중단한 뒤 통치기록이 들어 있는 원본 디스크를 빼내고 새로운 디스크로 교체해 "굉장히 수준이 낮은 자료만 일부 남겼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측은 "절대로 원본 디스크를 가져온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국가기록원은 관계자는"노 대통령 측이 관련법에 따라 진본을 이관한 뒤에는 청와대 하드디스크나 개인 컴퓨터에 남아 있는 관련기록은 모두 폐기하는 게 정상"이라며 "현 청와대 서버에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전자문서의 특성상 원본과 사본이 동일한 내용이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된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이 취사선택한 204만 건을 국가기록원에 보냈을 뿐인데 기록원은 이것을 원본이라고 (잘못)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기록원은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12일 봉하마을을 찾아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원ㆍ사본 논란은 자료의 불법 유출 여부뿐 아니라 유출기록 규모와도 관련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존의 e지원 시스템에 남겨진 자료가 1만6,000여건으로 생활안내문 수준이며 기존의 방대한 자료가 인계되지 않아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측은 "전 정부 기록은 대통령기록관에 넘기는 게 맞고 이들 자료 대부분은 기록관에서 볼 수 있게 돼 있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 측은 통치자료 204만건과 청와대 홈페이지 기록물 540만건을 국가기록원에 넘겼고 통치자료 가운데 40만건은 15~30년 동안 열람이 불가능한 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놓았다.
대통령 통치자료 유출의 합ㆍ불법성을 놓고 신ㆍ구 대통령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측은 공식적 문제 제기보다는 익명을 통한 외곽 때리기를 하는 인상이다. 노 대통령 측도 통치자료 유출ㆍ보관을 합리화하기 위해 법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진황 기자 정민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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