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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賞 '궤도' 재중동포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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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賞 '궤도' 재중동포 김광호

입력
2008.07.1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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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육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두 팔이 없는 남자의 육신에 대한, 어쩌면 관음증적 시선. 발가락으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고독한 육체는 다큐멘터리 소재로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최금호라는 이름의 그 남자 세계로 들어간 뒤, 김광호(48) 감독은 몸뚱이의 장애에 담긴 새로운 장애에 눈을 떴다.

그 장애는 금호의 것인 동시에 감독의 것이었다. TV 다큐멘터리 작업이 마무리돼 갈수록 팔이 잘려 나간 듯한 갑갑함이 감독을 눌렀다. 99분짜리 극영화로 기어이 그 중압감을 풀어 놔야 했다.

“내가 옌벤동포라는 점과 희귀한 소재, 아마 그쪽으로 먼저 눈길이 가겠죠. 하지만 극장에 들어서면 다른 게 보일 겁니다. 세상 살아가는 사람은 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개인이 바깥 세상에 내 놓기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도저히 바깥 사람들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철수(최금호)라는 인간을 통해 나는 그 영역의 소통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옌벤텔레비죤방송국 드라마부 책임자라는 직함을 지닌 감독은 카메라맨 출신이다. 20년 넘게 방송국 직원으로 일했고 1996년 늦깎이로 베이징전영학원(국립 영화 학교)에 입학해 공부도 했다.

극영화 데뷔작인 <궤도> (개봉 11일)는 최금호를 소재로 만든 TV 다큐멘터리의 외전인 셈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면 두 가지 점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먼저 현역 방송국 직원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연출이 밀도 있고 절제돼 있다. 그리고 철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최금호의 연기가 아마추어의 그것이라기엔 너무나 뛰어나다.

“촬영기사로 일하면서 카메라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그래서 대사를 극도로 줄이고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본 카메라만으로 주인공의 심태(마음)를 표현하려 했어요. 또 불우한 면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카메라를 들고 찍었죠.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면 그런 데서 나왔을 겁니다.

금호의 연기는... 얘가 오랫동안 다큐를 찍다보니 카메라를 신경쓰지 않게 됐어요. 또 절반 정도는 자신의 이야기니까 자연스러울 수 있었죠. 시나리오도 금호네 집에 8일 동안 엎드려 썼어요.”

<궤도> 는 소통을 간절히 바라는 인간을 그린다. 철수는 발로 뜯은 약초를 장애 내다 팔아 살아간다. 그에겐 가족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악몽만이 밤마다 그를 찾아오는 손님이다. 마른 삭정이 같은 그의 삶에 향숙(장소연)이라는 여인이 흘러든다. 그녀는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소리와 손이 닿지 못하는 침묵을 사이에 둔 채 둘은 눈빛만으로 대화를 한다. 표정마저 지워버린 그 눈빛은, 가라앉아 있으나 관객의 시선을 데워버릴 듯한 열을 담고있다.

“금호가 실제로 8살 때 어머니를 잃었어요. 향숙은 어쩌면 과거의 어머니가 현재에 나타난 모습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극 속에서 철수(금호)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향숙을 받아들이는 건 그에게 근친일 수도, 오히려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일 수도 있겠죠. 철수가 비극적 선택을 하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모태로 돌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의 궤도, 내가 영화로 표현하고자 한 건 그겁니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이미지로 엮어가면서 감독은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세공력을 보여줬다. 복잡한 언어와 사고로 지은 구조물 없이, 상처받은 인간의 눈빛만으로 생의 내밀한 속살을 묘파하는 힘이다.

그 능력을 미리 알아 본 영화진흥위원회가 이 영화의 제작비를 댔고, <우리학교> 의 고영재 프로듀서와 <경계> 의 장률 감독이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 스태프는 모두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옌벤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중국에서는 아직 영화적 주제와 소재에 제약이 많다. 게다가 감독은 소수민족이고 변방에서 작업을 해야야 한다. 제작 여건을 묻는 질문에 감독은 에둘러 대답했다.

“지난해 이 영화가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으면서 옌벤에서 영화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힘이 많이 됐어요. 올해 벌써 두 편이 완성됐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영화요? 난 인간의 내면, 한 인간이 세상과 충돌하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그런 과정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것까지 중국 정부가 간섭하고 그러진 않습니다.”

신상순 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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