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중국 중부 폭설로 철도 등이 끊겨 석탄 등 생필품이 산지에서 소비지로 수송되지 못하는 물류대란이 발생하자 한국의 한 무역업자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중국 정부가 물류난으로 인한 석탄 파동을 우려, 수출을 돌연 금지하는 바람에 중국산 석탄을 실으러 간 배가 빈 배로 돌아와야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2 티베트 사태 무력 진압으로 대중 비난이 거셌던 4월 중국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구의 비난을 19세기 중국 침략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던 중국 젊은이들이 프랑스의 세계적인 소매 체인업체인 까르푸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후 프랑스의 반중 정서는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이 장면들은 그물망처럼 연결된 세계 시장과 중국 시장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또 에너지, 식량 등 자원 문제에서 양면성을 지니는 중국의 모습도 담겨있다.
중국은 석탄ㆍ식량의 공급자, 석유ㆍ지하자원의 소비자라는 두 얼굴을 지녔다. 최근 6년간 10%가 넘는 급속한 경제 성장이 계속되면서 ‘자원의 블랙홀’이자 거대 시장과 자본을 무기로 한 세계 자원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말 일본 재무성은 석유 소비 2위국인 중국이 원유수입에서도 일본을 추월, 2위 원유수입국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소비되는 석유의 절반을 자체 생산하는 중국이 소비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일본을 앞지른 것이다. 5월 일본은 하루 376만 배럴을, 중국은 381만 배럴을 수입했다.
자원의 블랙홀로서의 중국은 세계 자원시장에서 상당한 함의를 지닌다. 이는 냉전시대 오일쇼크와 현 고유가 쇼크의 차이점을 보면 쉽게 드러난다. 과거 오일쇼크는 냉전의 축인 미국과 구 소련의 적절한 수요 견제로 인해 산유국의 입김이 상당히 제한됐다.
하지만 미국의 위상이 떨어지는 반면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는 지금은 공급자인 산유국들의 입김을 제어할 수단이 사라지고 있다. 상품시장은 100% 공급자 위주로 돼버렸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역시 상징적인 단면이다. 중국은 미국과 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종학살이 자행되는 다르푸르 사태의 가해자인 수단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수단이 생산하는 전체 원유의 절반이 중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철권통치 하는 짐바브웨에서도 각종 자원을 들여오는 중국은 짐바브웨에 대한 미국의 제재 제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중국이 수입국으로서의 국익만을 내세우는 나홀로 외교를 이어가면서 국제정치 지형마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중국 에너지 위기론’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에너지 소비량이 2025년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며 “특히 석유 자원의 수입이 급격히 늘어 세계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자원 다소비형 산업구조도 문제이다. 2003년 이후 중국의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10%를 상회하면서 에너지 생산 증가율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세계 자본의 경연장인 된 중국의 거대시장이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자원 흐름 왜곡과 그에 따른 국제질서의 파행을 더욱 부추기는 ‘부(負)의 세계화’를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신민족주의를 유발한 당사자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중국은 자체 생산하는 석탄으로 에너지의 70%를 충당한다. 중국의 석유 수입물량은 세계시장의 8%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세계화의 물결로 거인이 된 중국을 보는 서방의 시선은 여전히 의혹에 차있다. 2005년 중국해양석유(CNOOC)가 미국 굴지의 자원개발 회사인 유노칼 인수를 시도하다 실패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올해 말이면 2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외환보유고를 앞세워 중국이 여차하면 전세계 에너지 기업 매집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중국에는 ‘야오밍(姚明) 효과’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미 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는 야오밍의 몸값이 사실은 실제 기량 보다 중국의 어마어마한 TV 중계 시장이 더 크게 감안된 것이라는 뜻의 이 말은 중국에 대한 평가가 결코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까르푸 불매운동은 세계 어느 국가도 중국을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는 중국의 상황도 주목된다. 티베트 사태, 올림픽 보이콧 등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어김없이 국수적 색채의 민족주의 열풍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베이징은 기온이 섭씨 35도에 육박하는데도 택시 기사들이 웬만하면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한 기사는 “소비자 물가가 8% 이상 올라 어려운데 지난달 휘발유가격마저 20% 가까이 올랐다”고 하소연했다. 세계는 중국 정부의 유가 인상 조치로 중국 내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며 반색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자본을 투자해 탄생시킨 중국 시장이 자원을 싹쓸이하면서 신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강한 정치적 입김을 행사하는 것은 세계화의 아이러니이다. 중국이 세계화의 재앙일지 아니면 축복일지에 대한 답안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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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진허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류진허(劉金賀)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고유가로 대표되는 현재의 자원 흐름에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유가로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성장을 제약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 중국은 자원을 배타적,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네오 내셔널리즘을 유발한 원인제공자인가 아니면 피해자인가.
“개혁ㆍ개방 초기 자원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던 중국은 이제야 자원 수출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피해자이다. 중국의 자원은 풍부한 편이지만 1인당 자원량은 매우 적은 자원빈국이다. 최근에야 자원의 전략적 가치에 눈을 뜬 것이 이를 반증한다.”
- 중국이 자원의 블랙홀이어서 네오 내셔널리즘을 부채질한 것 아닌가.
“그런 주장은 ‘핑계’에 가깝다. 유가 급등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국을 견제하려는 요인도 있다고 본다. 미국이 압도하는 국제원유시장에서 중국은 피동적으로 가격을 수용하는 약자이다. ”
- 올림픽 보이콧 사태에서 중국은 까르푸 등 일부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거대한 중국시장을 무기로 휘둘렀다.
“중국의 구매력은 미국 등에 비할 수 없다. 중국 전체 부의 80%가 인구 20%에 집중돼있다. 소득불평등 지니계수도 남미 수준이다. 중국이 미국처럼 소비시장을 무기화하려면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
- 세계화가 심화할수록 자원을 전략 무기화하는 네오 내셔널리즘이 강화되는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나.
“결코 모순이 아니다. 어떤 나라도 세계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을 앞세운다. 하지만 네오 내셔널리즘의 악영향은 고려돼야 한다. 결국 국익과 악영향의 최소화 사이에서 평형점을 찾아야 한다.”
- 중국은 해외 광산ㆍ유전은 물론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인수ㆍ합병해 세계를 긴장시킨다.
“자원은 케이크에 비유된다. 누군가 많이 먹으면 누군가는 적게 먹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해외자원 개발에 너무 늦게 뛰어들어 난관이 많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중동이 아닌 아프리카 등 주변부에 접근해야 했다. 천연가스 대국인 러시아도 중국에 여전히 까다롭다. 미국은 중국 기업의 미국 에너지기업 인수합병을 무산시켰다. 아직 에너지와 자원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
- 중국의 에너지 위기론이 자주 거론되는데.
“미국 다음의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석유 소비량의 50% 가량을 수입한다. 수입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지금도 중국의 곳곳에서는 석유가 없어 난리이다. 석유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닌 국가전략 문제로 격상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대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석유 수입량이 늘어나는데 국제적으로는 우월한 위치에 있지 못하는 상황이 중국 위기론의 본질이다. 미국은 이란문제 등 중동 현안에 개입해 이란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을 상당히 어렵게 하고 있다. 중국은 수단, 나이지리아 등으로 눈을 돌려 전력 투구할 수 밖에 없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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