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약숟가락을 거부하다가 “안 먹으면 주사 놓는다”는 엄포에 겁이 나 약 먹은 기억이 누구나 한번쯤 있다. 그때 뾰족한 주사바늘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주사제는 혈관으로 곧바로 흡수돼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주사로만 효과가 있는 약도 적지 않다.
프랑스 외과의사인 C. G. 프라바즈가 1853년에 발명한 주사기는 최근 변신을 거듭하면서 휴대가 간편하고 편리한 펜 모양까지 나왔다. 의료기기는 환자의 불편을 줄이며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펜 모양으로 바뀐 인슐린 주사기
당뇨병을 치료하는데는 펜(pen) 모양의 인슐린 제제가 일반화됐다. 하루에 여러 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는 환자는 몇년 전만해도 유리로 된 앰플이나 고무마개로 덮여있는 바이알에 담긴 인슐린을 일일이 주사기에 옮겨 담아 투여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정확한 용량 투여가 어려웠고 주사가 번거로웠다.
이에 따라 인슐린을 미리 충전한 펜 모양의 주사기가 개발됐다. 사노피아벤티스가 개발한 ‘란투스’(성분명 인슐린 글라진)와 노보노디스크의 ‘레버미어’(성분명 인슐린 디터머)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제품은 용량을 조절할 때 들리는 소리로 주입되는 단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주입 버튼 부분의 돌기를 다르게 디자인해 시력이 나쁜 환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한번 투여로 24시간 지속적으로 작용해 식전이나 식후에 계속 투여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사노피아벤티스는 이번 달에는 손이 많이 떨리는 환자가 편안하게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도록 용량을 오차없이 1단위까지 정확히 투여할 수 있는 ‘란투스 솔로스타’도 출시했다.
골다공증 치료에도 펜형이 등장했다. 한국릴리가 출시한 ‘포스테오’는 기존 치료제들이 뼈 성분이 체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하는 것과 달리 뼈 자체를 만드는 새로운 개념의 골다공증 치료제다.
투약 원리는 펜형 인슐린 제제와 같다. 한국애보트도 최근 펜형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휴미라 펜’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손 관절 통증과 변형이 심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가 손쉽게 주사기를 잡고 스스로 주사할 수 있는 원터치 클릭 방식이다.
■ 갈수록 작아지는 알약, 패치
나이 들면서 각종 생활습관병(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면서 약 봉지가 하나 둘씩 늘어난다. 심하면 한번에 한 줌이나 되는 약을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도 상당수다. 특히 심혈관계 질환이 그렇다. 동시에 여러 질환을 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약 크기가 작다면 목넘김이 쉽다. 이러한 소비자 욕구를 반영해 초소형화한 약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으로 안지오텐신Ⅱ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 고혈압 치료제인 ‘아타칸’(한국아스트라제네카)이다.
한꺼번에 약을 많이 먹어야 하는 환자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알약 지름을 7㎜로 줄였다. 기존 고혈압 약의 3분의 1 크기다. 크기는 줄었지만 혈압 강화 효과는 24시간으로 늘어났다. 또한 심부전 치료제로도 쓰여 혈압과 심장기능 보호 효과까지 얻었다.
먹는 알약의 크기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지난해 발매된 패치형 천식 치료제 ‘호쿠날린’(한국애보트)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다. 기존 패치형 치료제의 4분의 1에 못미치는 정도다. 패치형이라는 간편함으로 약을 먹기 힘든 영ㆍ유아나 고령자에게 적합하다.
■ 다양해지는 복용법
간질치료제 ‘데파킨’(사노피아벤티스)은 맛과 향이 없다. 또한 미세한 과립 알갱이로 돼 있어 요구르트나 우유, 밥 등에 뿌려서 먹을 수 있다. 기존 시럽형 제제와 비교해 약 먹는 부담이 한결 적다.
또한 스틱형 포장이라 어린이와 고령 간질 환자는 물론 활동량이 많은 성인 환자의 만족도도 높다. 다만 따뜻하거나 뜨거운 음식에는 효과가 떨어지므로 피해야 한다.
LG생명공학이 내년 하반기에 내놓을 세계 최초의 항(抗) 구토 패치제 ‘산쿠소’(영국 프로스트라칸사)는 피부에 한번 부착하면 효과가 5일간 지속된다. 기존 항 구토제는 3~5일마다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야 했다.
당뇨병 환자에게 혈당 관리는 고역이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는 당뇨관리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원터치 혈당관리 소프트웨어’(한국존슨앤드존슨 메디칼)는 사용자의 혈당 변화를 다양하게 점검할 수 있다.
사용법도 아주 간단해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고 등록된 자사 제품을 연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혈당 변화를 시간대, 상황별로 분석해 맞춤형 교정과 정기 병원진료에도 도움을 준다. 병원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쓴다면 자신의 혈당측정기만 갖고 병원에 가면 된다. 물론 당뇨수첩도 필요없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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