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식(69)씨는 ‘투잡스(Two Jobs)족’이다. 그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빡빡하다. 평일 아침엔 지하철역 근처에서 무료 신문을 나눠주고, 낮엔 이동전화 선불요금제 서비스를 대행 판매하는 업체로 출근해 영업을 뛴다. “주위에선 이 나이에 이렇게 일하면 ‘저녁엔 녹초가 되겠다’며 한 걱정씩들 하지. 물론 힘들지. 그래도 난 괜찮아. 젊었을 때 배워놓은 척추교정술로 그때그때 피로를 풀어주거든.”
서울 장위동에 살고 있는 박씨는 새벽 4시에 잠자리에서 눈을 뜬다. 그는 서울시 고령자취업알선센터의 소개로 5월부터 평일 매일 아침에 서울 지하철 6호선 보문역에서 시민들에게 무료 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고령자취업알선센터(1588-1877)는 서울 지역에 17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만55세 이상 고령자는 누구나 취업알선을 받을 수 있다.
박씨는 보문역 출입구 6곳에 신문 가판대를 세워 놓고 아침 6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일한다. “그냥 서 있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3시간 꼬박 서 있어야 하는데다, 폐지를 모아 파는 노인들이 무료 신문을 뭉치로 가져가지 못하게 막는 일도 고역이다. “몸은 하난데 감시할 가판대는 6곳이잖아. 매일 500부 정도를 나눠주는데 비 오는 날은 더 힘들더라구. 요즘 같은 장마철이 두려워. 허허허.” 신문 배포로 쥐는 돈은 월 30만원이다.
신문 가판대를 접고 그가 향하는 곳은 서울 창동. 이동전화 선불요금제 서비스를 대행 판매하는 업체로 출근, 가입 회원을 유치하는 영업을 한다. 정해진 급여는 없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올 1월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가 한 달에 받는 돈은 10만원 안팎. 그는 “본격적으로 영업에 탄력을 받으면 연말부턴 월 100만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씨는 30년 동안 서울 세종로의 미국대사관 직원으로 일해 오다 2003년 11월말 정년 퇴직했다. 자녀 2명을 결혼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는 그는 정년 퇴직할 때만 해도 “아내와 여행도 하며 여유롭게 노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수입은 없는데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날아오는 청첩장이며 각종 경조사 소식은 왜 이리 많은지. 다섯 손자들에게 ‘부자 할아버지’ 소리는 못 들어도 기꺼이 지갑을 열어 용돈 줄 수 있는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픈 마음도 생겼다.
“돈도 중요했지만 이 나이에 일자리를 찾아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돈이 아니야. 아무 일 없이 노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더라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야. ” 박씨는 “내 몸엔 고장 난 곳이 하나도 없다”며 “하루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저녁에 술 한잔 하는 것이 요즘 사는 낙”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일환 고용정보원 홍보협력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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