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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박물관의 퓨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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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박물관의 퓨전화?

입력
2008.07.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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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어느 곳이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박물관에서 문화행사가 부쩍 늘었다. 관현악 사중주, 어린이 합창대회, 보디 페인팅, 영화 상영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물관을 찾는 분들 중에서 “이런 행사가 박물관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마도 박물관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고 점차 ‘퓨전(fusion)화’되어간다고 걱정하는 것이리라. 바꾸어 말하면 전통적인 박물관 활동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복합적인 활동에 치우치는 듯한 모습을 걱정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퓨전이 있다면 본질도 있을 터이니 한 번 쯤 박물관의 본질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원래 박물관을 의미하는 뮤지엄(museum)은 라틴어인 뮤제이옹(museion)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시와 역사, 음악, 연극, 조각, 천문을 관장하는 그리이스의 신 ‘뮤즈(Muse)의 집’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뮤즈에 대한 제사를 지낸 후 신에게 올린 각종 귀중품을 별도로 전시하거나 창고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박물관이란 원래 ‘복합문화 공간이면서 전시ㆍ수장 공간’이었기 때문에 이른바 ‘박물관의 퓨전화’가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뮤제이옹은 오늘날의 박물관과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박물관의 성격과 이용자 때문이다. 즉 뮤제이옹은 오늘날처럼 다변화되지 못한 사회에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박물관이 유물을 활용하는 전문기관이라는 인식이 싹트지 못했다. 또한 그곳은 왕족이나 귀족, 승려, 상인과 같은 특정 계층만의 전용 공간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틀이 18세기 이후 무너지면서 뮤지엄, 즉 박물관은 점차 유물을 다루는 전문기관이며, 보다 많은 대중을 위한 전시ㆍ교육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 출발점에 선 대표적인 박물관이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다. 그리고 현대에 접어들면서 ‘박물관은 유물이라는 특정의 자산을 잘 활용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감(happiness)을 제공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박물관의 사명(mission)’이라는 인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박물관의 퓨전화’에 대하여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박물관의 본질을 잘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물관의 자산인 유물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유물 관리나 보존처리 시스템을 발전시켰으며, 유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하여 각종 연구·조사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또한 분석된 정보를 활용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전시ㆍ교육ㆍ체험 프로그램을 개발ㆍ실행하고 있다. 다만 오해를 없애기 위해 소장된 유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화행사는 지양하거나 실행하더라도 보다 박물관답게 변용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보디 페인팅을 할 때, 얼굴에 잠자리 대신 금관을 그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박물관은 고정된 틀이 없이 꾸준히 발전해온 결과물이며, 그 변화는 사회의 발전과 대중의 요구에 의한다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만약 지금처럼 하나의 공간에서 보다 많은 즐거움을 얻으려는 대중의 요구가 점점 더 강해진다면, 언젠가 퓨전화되었다고 생각되는 박물관이 오히려 박물관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정착될지도 모르겠다.

유병하 국립 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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