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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9> 루딩교를 장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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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9> 루딩교를 장악하라

입력
2008.07.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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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대제 39년인 1700년. 티베트와 쓰촨(四川)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의 중간에 있는 캉딩(康定)지역에서 티베트계인 장족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너무 먼데다가 제대로 된 도로도 없어 청나라는 반란 진압에 너무나 애를 먹었다.

특히 청두평원과 티베트지역을 가로지르는 다두강(大渡河)은 큰 장애였다. 반란을 진압한 뒤 강희대제는 진압군을 용이하게 티베트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이 강에 다리를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장정의 클라이막스 중 하나를 이루는 루딩(瀘定)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청나라는 이 다리를 짓기 위해 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 기술자들을 거액을 주고 초빙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리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철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루딩교는 길이 101m에 너비가 3m를 넘는 웅장한 현수교로 13줄의 굵은 쇠사슬이 지탱하고 있다. 그 중 9줄은 다리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데 줄과 줄 사이에 나무판자를 깔아 간격을 메웠다.

문제는 13개의 굵은 쇠사슬이 21톤이나 나가는 1만2,164개의 체인으로 만들어져 있고 각각의 기둥이 20톤에 달해 공사에 막대한 쇠가 필요하다는 것. 청나라는 필요한 쇠를 구하지 못해 고생을 하다가 97일 만에 한 산속에서 철광을 찾아냈다고 한다.

1705년 다리가 완공되자 강희대제는 이 다리가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라는 뜻에서 ‘루딩’ 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실제 다리가 이 지역에 안정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차와 소금, 비단 등이 티베트의 라싸로 들어가고 티베트의 모피와 약재가 청두로 들어오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요한 통로가 된 것은 확실하다.

홍군은 다두강를 건너 북상을 하기 위해 루딩교를 장악하기로 했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만든 루딩교가 이번에는 홍군이라는 새로운 반란군의 구세주가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역사는 때로는 그 주역들이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 쇠사슬에 매달려 불길을 뚫고

루딩교 탈취명령을 받은 두 군대는 다두강를 가운데에 두고 행군을 했다. 길이 좁은데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돼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로 인해 길이 미끄러워 한 발만 헛디뎌도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다시 행군을 떠나려는 순간 말을 탄 전령이 나타나 명령문을 전했다.

“29일까지 루딩교를 탈취하라.” 29일이면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 갈 길은 240리(약 100km)나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진군한 최대속력은 하루에 160리 였는데 이보다 더 빨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밥을 해먹을 수 없어 생쌀을 씹고 물을 마시며 행군을 계속했다.

해가 진 뒤 한 마을에서 대나무 울타리를 통째로 사 그것으로 횃불을 만들어 들고 행군을 했다. 밤을 샌 야간행군으로 1935년 5월29일 아침 6시 특공대는 루딩교에 도착했다.

다리의 서쪽 편을 장악하고 건너편을 보니 모래주머니로 만든 참호에 국민당군의 총구가 보였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다리에 달랑 쇠사슬만 남아있고 그 위에 깔려있던 널빤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간밤에 국민당군이 걷어갔다는 것이었다. 저 다리를 어찌 건널 것인가? 나팔소리와 함께 특공대가 쇠사슬에 매달려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국민당군의 총탄이 쏟아졌다. 한 병사가 강물로 떨어졌다.

총알보다는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소리를 내며 발 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더 무서웠다. 건너편이 가까워지자 앞에서 갑자기 불이 솟구쳤다. 국민당군이 불을 지른 것이다. 그러나 한 대원이 앞장서 불길을 뚫고 뛰어 들었고 나머지 군대로 그를 따랐다.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 때 돌연 적군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반대편으로 진군해 온 홍군이 나타나 도착, 총격을 가하자 포위당한 상황을 깨닫고 도주한 것이다. 홍군은 널빤지를 모아 다시 다리에 깔았다. 루딩교를 탈취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루딩교에서 실제 전투가 있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1936년 에드거 스노와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 소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루딩 이야기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당시 루딩교에는 제대로 된 국민당군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문짝을 빌려갔던 것을 기억했고, 어떤 이는 홍군이 다리에 덮을 나무를 구하고 다녀 만일을 위해 준비해준 관을 내주었다는 증언이 있음은 밝히고 있다.

이는 나무를 놓지 않고는 걸어서 다리를 건너갈 수 없었던 다급한 상황을 의미한다. 또 루딩교의 전투에 과장이 있다 해도 장제스(張介石)가 자연이 홍군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 다리의 수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공안에게 추방당하다

루딩교에 도착했다. 루딩은 아담하면서도 그 동안 보아온 시골의 도시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였다.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 위치를 확인한 뒤 근처의 한 카페에 내렸다.

어제 한국에서 비행기로 청두로 날아온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차마고도의 비디오작가 박종우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중국의 오지, 그것도 역사적인 루딩에서의 만남은 너무도 반가웠다.

장정 유적 중 가장 유명한 사진을 들라면 당연 루딩교이다. 앞으로 다리 진입소로 쓰이는 중국전통 건축물을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린 쇠사슬 다리가 시각적으로 그 어느 장정의 유적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장정을 준비하면서 여러 책, 비디오 등에서도 수백 번 본 적이 있는 다리이다. 그렇게 너무도 익숙한 루딩교가 나타났다. 루딩교가 장정의 상징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장정을 재연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입장료를 받는 진입소로 들어가자 기념품가게, 홍군 복장을 빌려 주는 가게 등으로 복잡했다. 박 감독이 특집에 쓸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홍군복을 한 벌 빌려 내게 입어보라고 했다. 바지는 그렇고 해서 상의를 입고 홍군모자를 썼다. 영락없는 ‘홍군 손호철’이다.

루딩교로 나가자 우선 다두강의 물소리가 나를 긴장시켰다. 여러 번 책으로 읽은 것이지만 역시 다두강의 급류는 무서웠다. 쇠사슬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다리답게 무척이나 흔들렸다. 그리고 바닥도 쇠사슬에 나무 조각들을 얹어 놓은 것인 만큼 나무 조각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그 위를 걸어 건너면서 자꾸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무 조각도 없는 다리를 쇠사슬에 매달려 건넜다는 홍군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그런데 진입소 밖으로 나오자 공안이 다가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외국인들로 보이는 일행이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다니자 누군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여권을 보여주자 이곳에 온 여행목적을 묻길래 “장정 취재 중”이라고 답하며 준비한 서류까지 보여줬다.

그러자 공안은 “이곳은 최근의 티베트사태로 인해 위험지역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며 자신들의 행정구역을 벗어나 청두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간즈(甘孜)에서 시위가 발생한 사실은 알고 있었고 루딩이 행정구역상으로 간즈 장족 자치구에 속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시위발생지역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 별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공안은 아무래도 우리가 청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여권을 복사한 뒤 돌려주고도 자신들이 에스코트를 해 주겠다며 4륜 구동차로 앞서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결국 이들은 루딩 행정구 끝까지 가서야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았는지 그곳 차량 검문소를 지키는 경찰에게 우리 차의 번호를 적어두도록 지시한 뒤 한참을 미행하다가 돌아갔다. 루딩에서의 짧은 행복은 이렇게 끝이 났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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